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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May 08. 2021

쉼과 용기

샘플 3-31

상담센터를 다니면서 얻은 것은 용기였다. 이후의 상황들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혹시 내가 한 말 때문에 조직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면서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을 두려워했다. 사실 어떤 곳보다 쉽게 문제점과 해결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그렇게 되었다.


나의 마음은 쉬고 싶었다. 하지만 일은 계속하고 싶었다. 나는 내 일이 좋았고, 좋아했고, 좋아한다. 마음을 정비하기 위해 긴 휴가 갖고 싶은 것이 깊은 속마음이었지만 그러기엔 경제적인 어려움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쉼에 대한 생각은 생각이 많은 나에게 더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오히려 일이었다.

이 복잡한 머릿속을 들어갔다가 오신 선생님은 휴가는 물론이거니와 물질적인 보상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우리 조직은 돈이 없었다. 그 시기에는 급여도 제대로 주지 못했다. 


"사무실 돈 없는 거 아는데 어떻게 말해요..."


울면서도 튀어나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누가 누굴 걱정했던 걸까.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선생님은 그런 걸 고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조직이 아니라면 샘플3에게 직접 청구해야 한다고도 하셨다. 하지만 그 얘길 듣고 '샘플3도 돈이 없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보다 돈을 달라는 말은 절대 못 할 거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다. 이 일로 경제적인 득을 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도 들렸는지, 보상이라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당연하게 생각하라고 하셨다. 말하는 족족 마음을 들키고 있는 것 같아서 쑥스럽기도 했다.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 지금 당장 제일 필요한 것은 '공간 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간 분리의 여러 방법 중에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재택근무였다. 이미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것을 해 본 상황이었다. 사무실에 다른 방이 있지 않았고, 내가 사무실 공간 자체를 공포스러워했음도 이유가 있었다. 얼굴을 보지 않고, 마음을 조금이나마 돌보면서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 역시도 재택근무였다. 


상담이 끝난 뒤 상담 소견서를 받았다. 병원에 가서 약물치료를 겸한 우울증 치료를 받을 것도 권하셨지만 약물 치료는 최대한 천천히 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용기를 얻었다. 선생님께 받은 상담 소견서는 내가 공간 분리를 요청할 때 쓸 수 있는 마법서 같았다.

마법서를 손에 쥐고 나니 나의 고통을 언제든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과 핑계들로 공간 분리 요청은 미뤄졌다. 입을 떼지도 못하고, 그것을 품고만 있었다. 그래도 품 안에 상담 소견서가 있는 덕분에 꽉 충전되었던 용기가 10% 정도밖에 빠지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남은 용기가 사라지기 전에 공간 분리를 요청하기로 했다. 한 해를 정리하고 다음 해를 준비하는 내부 회의가 연달아 예정되어 있었다. 어쩌면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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