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토로 May 09. 2021

공간 분리

샘플 3-32

내부 회의가 시작되었다. 공간 분리를 요청하리라 마음을 먹고 또 먹었지만 회의가 시작할 때까지도 고민에 빠져있었다. 말을 해도 되는 것일까?


그날 회의도 역시 원만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럭저럭 넘어갔다. 샘플3은 회의 말미에 다음날 진행 예정인 회의에서 '업무 형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는 이야기를 건넸다. 그는 회의를 자주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를 했다. 잦은 회의를 주장했던 것은 샘플3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인 것은 사무실 직제에 의한 업무와 활동가 분장을 통한 근무형태가 좋은지를 이야기하자는 말이었다. 나는 우리가 수직이 아니라 수평구조로 운영하자고 합의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업무도 이미 분장해서 진행하고 있는 중인데(팀원은 없지만 팀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수직적인 형태를 원한다는 말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자신의 주장을 모호하게 이야기하고 근무 형태라는 포장을 내 비쳤으니 오히려 공간 분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가 고민을 하고 있는 중에 샘플3은 말을 이어갔다.


코로나로 인한 재택 요구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묵묵부답으로 '반대 의견'을 내비친 것이라고 했다. 활동가들이 휴가를 가는 것이 '감정이 상한다'는 말을 또 했다. 케케묵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온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관철될 때까지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것을 진저리가 났다. 화가 났지만 우선 샘플3이 하는 얘기를 계속 들어보도록 했다. 사실 이맘때의 나는 늘 화가 나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책임자라서 다 알아야 한다면서도 책임을 회피하는 샘플3의 대화 방식에 살짝 언성을 높였다.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싫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그 생각을 따르지 않는 우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대화 방식을 더 참기는 어려웠다.


우리가 의견을 덧붙이자 샘플3은 더 이상의 회의를 진행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래서 마무리하기 전에 상담 소견서를 꺼냈다.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사무실적인 일이기도 해서... 상담을 다녔구요. 상담 다녔고, 상담을 다닌 사유를 그냥 말씀드리면 샘플3 때문에 다녔어요. 2년 전에 어쨌든 일이 있었고, 관련돼서 문제들을 잘 참아왔지만 1년 전에 크게 터졌고, 그게 제가 감당이 안 돼서 다녔어요. 

이러는 와중에 사무실에 일이 되지 않고 대화가 되지 않는 것에 힘들었고, 상담센터에서는 우울증 치료와 공간 분리 명령을 받았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그러지 못해 왔어요. 오늘 근무형태에 대해서 이야기했기 때문에 말씀을 좀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공간 분리는 재택과 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지만 개인적으로 굳이 일을 쉬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있어서 공간 분리를 해서 계속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내일 회의에 이 얘기도 같이 논의해 주셨으면 해요."


샘플3은 "알겠습니다. 의견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로 나의 말을 끝냈다. 나 역시도 다음날 회의에서 이야기했으면 했고, 구성원들이 나의 상황과 상태에 대해 조금 더 고민을 한 뒤에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에 그 말에 동의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반응이 거세지 않았다. 아마 샘플3의 자존심에 거기서 반응하는 것을 지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샘플3은 다른 일정으로 사무실을 비웠다.

동료는 나를 걱정하면서 그래도 다음날 진행될 회의에서 이야기를 잘해보자고 했다. 이야기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마음도 같았다. 이야기가 잘 되어야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렇지만 나는 대비를 하기 위해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아마 샘플3은 자신이 그만둔다는 얘기를 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미 그는 '그만둔다'는 무기를 쓴 적이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또 그 무기를 쓸 것이라고 예상했다. 동료는 그렇게까지 하겠냐고 하면서도 지금까지 내가 예상했던 샘플3의 행동들이 크게 벗어난 적이 거의 없었다는 말과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돗자리를 깔아야 했다. 그는 다음날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 그만두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쉼과 용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