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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May 20. 2021

부처님오신날 만난 부처님 세 분

첫 번째, 사슴벌레 부처님.

아침 일찍 대전으로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러 나갔다. 버스를 타려는 순간, 약속이 취소되었다. 터미널에 도착하면 라디오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조용한 곳을 찾아야 했는데, 그 수고를 덜었다. 약속이 취소된 것은 아쉬웠지만 다행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털썩 침대에 누웠는데 베란다 방충망에 뭔가가 날아들었다. 늘 오는 벌레들이려니 풍뎅이려니 했는데 자꾸 눈이 가서 보니 정말 세상 너어무 오랜만에 보는 사슴벌레였다. 어릴 때 사슴벌레 잡는다고 온 산을 다 뒤지고 다녔는데, 이렇게 제 발로 찾아오실 줄이야!

오셨으니 구경이나 해 보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작년에 우리 집 베란다에 식당을 차리고 있던 호랑대게(호랑거미인 줄 알고 이름을 호랑대게로 지어줬는데, 알고 보니 무당거미였다)의 남은 거미줄이 몸에 묻고 말았다. 톡! 하고 떨어지길래 아래로 떨어진 줄 알았는데, 난간에서 버둥거리고 계셨다. 구출했다.


베란다 텃밭에 사용하느라고 닦아놓은 치킨무 통에 넉넉하게 들어가실 정도로 앙증맞으셨다. 대전에 갔다면 만나지 못할 분이었다. 우리 집 베란다로 부처님이 오셨다.


거미줄을 떼어드리고 요리저리 사진을 찍고 사슴벌레님은 창피하시겠지만 뒤집어진 모습도 찍었다. 뒤집어진 모습이 생각보다 빤딱빤딱하고 늠름했다.

높은 층까지 올라오시느라고 기력을 빼신 건지 생각보다 반항하지 않으시길래 기운 차리시라고 바나나를 조금 떼어드렸다. 사슴벌레님은 바나나를 모르는 척하셨다.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시다니 무념무상을 통달한 분이신가 보다. 우리는 통달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안 보는 척, 모르는 척해드렸다. 어느 순간 사람의 시선이 없다고 느끼셨는지 오물오물 맛있게 바나나를 드시고 계셨다. 아직 내공은 부족하신 것 같았고, 쑥스러움이 많으신 분인 것 같았다.

해 지면 밖에 데려다가 드린다고 말씀드렸는데... 세상 너무 귀여우셔서 우리 동심을 위해 며칠만 더 모시고 있으려고 한다.




두 번째, 잉어 부처님.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점심 약속을 잠깐 다녀왔다. 여러모로 대전 약속 취소는 나이스였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좋은 곳을 발견했다며 산책을 가자는 동생의 권유에, 해 질 때쯤 가자고 했다. 사실 말이 산책이었지 곧 부서질 것 같은 스쿠터를 타고 드라이브를 가는 것이었다. 물론 50cc의 작은 녀석이라서 우리 둘을 태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안되면 걸어가면 되니 산책 가는 결정을 번복할 일은 없었다.

다행히 스쿠터는 둘을 태우고도 달려줬고, 벌목이 되었지만 찬바람이 숭 내려오는 계곡을 끼고 있는 강으로 달렸다. 동네 고양이, 동네 강아지한테 다 인사하고 사슴벌레 부처님을 어디다가 데려다가 드려야 하나 여기저기 살펴봤다.

그리고 상수원보호구역의 어느 보 앞에 섰다. 며칠 내린 비로 물이 많아서 넘쳐흐르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잘박거리는 하천을 건너갈 것이냐 그냥 운치를 즐기기만 할 것이냐 고민하고 있는 찰나... 들렸다. 턱! 하는 소리가.

머리 위로 뭔가의 그림자가 지나가는 느낌이 있은 뒤 난 소리였기에 동생과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우아! 으아!!!!"


우리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거대하고 거대하신 잉어님이었다. 퍼덕퍼덕 포켓몬의 잉어킹보다 더 퍼덕퍼덕하고 있었다. 황금색인 걸 보니 이로치 잉어킹이었다. 어쩌지 어쩌지를 한 백번을 외쳤다. 하도 퍼덕거려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간은 욕심덩어리인지 그 와중에도 사진이 찍고 싶었다. 어쩌면 용왕님의 셋째 아들 혹은 셋째 딸일지도 모르는 잉어 부처님... 죄송합니다. 사진을 좀 찍을게요.

힘이 장사셨다. 한번 파닥 하실 때마다 비늘이 떨어져 나갔다. 크기도 족히 80cm는 넘어 보였다. 신발 벗기 귀찮아서 건너가는 걸 포기하고 있었던 건데 잉어님의 퍼덕거림 몇 번으로 신발, 바지 할 것 없이 다 젖었다. 그게 무슨 대수랴 낚싯대 한 대 걸지 않고 이만한 잉어님이 그냥 눈 앞에 나타나 주셨는데.

(보 때문이겠지만)하늘에서 떨어지신 걸 보니 용 되시려다가 떨어지신 건가. 견습생이신 건가.


힘이 좀 빠지셨을 때 동생이 들어드렸다. 사실 나도 들고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안 그래도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내가 들다가 또 떨어뜨리면 치명상 입으실까 봐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 눈에 가득 담고,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은 것으로 만족해야지 했다.


사실 궁핍한 백수라 어디 팔아볼까의 고민도 잠깐 했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일로 힘든 거 아시고 처지지 말고 기운 내라고 보여주신 건가 싶어서 다시 강으로 보내드렸다. 피가 많이 나셔서 걱정을 했는데 유유히 잘 가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잉어 부처님, 꿈에 오셔서 집에 잘 가셨는지 알려주세요." 했지만 오진 않으셨다. 가실 꿈이 많으시겠지.


직업병을 살짝 보태면.. 하천의 보가 목적이 있겠지만서도 과연 물고기님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그나마 그곳의 어로는 어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흔히 어로라고 하는 곳은 어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 이렇게 튀어나온 물고기들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길은 이정표가 없어니 알기 어렵고, 지금처럼 건너가는 길에 물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으면 말라죽기 일쑤다. 인간을 위한 구조물이 인간보다 먼저 살고 있었던 생물들보다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깊게 고민해봐야겠다.


잉어님 보내드리고, 떨어진 비늘을 몇 개 주워왔다. 잉어는 비늘로 나이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 봐도 잘 모르겠어서 그냥 크기 비교만 해 봤다. 크다. 500원 동전보다 훨씬 크다. 지금은 바싹 말라서 돌돌 말려있다. 물에 불려뒀다가 판판하게 말려봐야지.




세 번째, 방아벌레(a.k.a. 똑딱벌레) 부처님.

잉어님과 만난 설렘과 신기함, 두근거림, 흥분을 가지고 집에 들어와서 우선 씻었다. 잉어님께서 내려주신 비린내가 생각보다 심했다. 그래도 집에 와서 계속 "우아, 우아. 어떻게 그래."를 계속 외쳤다. 일생에 다시는 없을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에서 내린 잉어님이라니.

흥분이 조금 가라앉히고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동생이 나를 불렀다.


"누나, 이거 똑딱벌레 아냐?"


마지막 밤에 찾아오신 분은 방아벌레 부처님이었다.

어릴 때 참 자주 볼 수 있는 벌레였고, 딱딱 튀는 게 신기해서 손에 쥐고도 있어보고 맨날 뒤집어 놨던 곤충이었다. 그들의 고난은 우리의 기쁨이었다. 쓰고 나니까 참 고약한 놀이였지만 사실 꽤 재밌었다. 그런데 이 분, 요즘은 참 보기 힘들다. 도시에 살고 있어서 일까? 아님 정말 개체수가 줄은 걸까?

방아벌레님은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컵에, 그것도 물이 들어있는 컵에 들어가 계셨다. 대체 어디로 들어오셔서 그 작은 물컵까지 들어가신 거예요. 늦게 발견했으면 익사하실 뻔했잖아요.

밖으로 보내드리기 전에 오래간만에 똑딱벌레 튀는 것도 보고 싶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영상을 찍었다. 그 실력 여전하셨다. 컵이 낮아서 그랬지 아마 저 저 하늘 높이까지 올라가실 분이다. 똑딱! 똑딱! 머리핀 똑딱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온 힘을 다해 뒤집어진 제 몸을 뒤집는 모습은 본받을만하다.




분명 지난번 고양이와 강아지를 훈련시키지 못한 것으로 드루이드가 아님이 확실해졌는데, 부처님오신날 나와 내 동생은 명확히 드루이드였다. 아? 혹시 둘이 같이 있어야 그 능력이 발휘되는 것일까?


뭔가 묘하게 일이 어긋나는 하루였다. 그리고 뭔가 묘한 인연으로 세 부처님을 만났다. 혹시 최근에 부처님 만나러 안 갔다고 만나러 오셨던 것일까? 


부처님, 업으로서 환경 일은 그만뒀지만 일로서가 아니라 늘 생명을 아끼는 그런 수덕화(법명)로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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