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토로 May 18. 2021

술집에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술을 안 먹은 지 두 달.

회식이나 사람들을 만날 때 술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자리에는 빠질 수는 없다.

소주잔에 색깔 비슷한 아니, 똑같이 색깔이 없는 맹물을 쏟아붓고 '짠!'도 하고, 원샷을 하면 '캬~'소리도 내고 그런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은 내가 마시는 게 소주인지, 정수기 물인지, 수돗물인지 알 것도 없이 같이 술을 마신다.

사람이 술이 취하는 것은 알코올 때문일 것인 게 분명한데 이상한 것이 있다. H₂O만 마신 나도 점점 취한다. 어쩌다 흘린 술 한 방울이 술을 담고 있는 척하는 나의 술잔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 아니면 술 먹고 바로 안주를 집어 먹는 그 젓가락에 딸려 안주에 떨어진 걸 염치없이 안주나 주워 먹으며 마셨을지도 모른다. 마셨다가 올바른 표현인가는 의문이다.


흔히들 분위기에 취한다고 하는데, 그건 분위기가 좋을 때 쓰이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분위기가 좋지 않은 술자리에서도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취하는 것 같았다. 다리만 비틀거리지 않았지, 아! 속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머리가 멍하니 집에 들어가면 바로 자야 할 것 같고, 몸은 무거운 것 같고, 술기운도 도는 것 같다. 

결정적으로는 술자리에 있을 때다. 정신이 멀쩡한 나는 혀도 멀쩡하고, 귀도 멀쩡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정신이 멀쩡하지 않은 것 같다. 혀도 좀 꼬이는 것 같고, 귀는 어디에서 누가 먹었는지 잘 들리지도 않는다. 네? 뭐라구요? 알아듣지 못해도 같이 웃어줘야 한다. 진짜 황당한 건 그 술자리가 시끄러운 자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정~말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용하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자리였다는 것이다. 

근데 잘 들리지 않는다. 이쯤 하면 내 귀의 상태를 의심해 봐야 하는 것일까? 혹시 술집에서 무슨 마술이라도 부리는 건 아닐까? 마법인가? 술을 안 마신 사람도 술자리에 가면 취할 수밖에 없는 그런 마법.


이렇게 되면 엄청난 의심을 해 본다. 모든 술집의 안주에는 술이 첨가되는 것이 아닐까? 코알라(꽐라)로 만들어서 술과 안주를 마구마구 시키게 만들려는 그런 속셈이 있는 건 아닐까?라고 해도 따뜻한 안주에 어떻게 알코올이 남아 있을 수 있겠어하면서 현실에 마주한다.

그런데 화채 안주는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화채 안주는 시원~해야 제 맛이어서 얼음도 들어가는데 그렇게 시원하면 알콜향이 잘 나지 않았던 것 같다. 화채는 과일향 하고 단 냄새도 많이 나니까, 그리고 화채 할 때 사이다를 넣는데, 사이다랑 소주랑 섞어 먹으면 소주 맛이 거의 안 났던 게 생각난다. 그러니까 몰래몰래 남은 소주를 화채에 부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술집 주인의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레시피'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뭐 그럼 어때, 술값 아끼고 좋은데.라고 말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리에 같이 따라갔다가 술을 먹지 말아야 할, 혹은 먹지 못하는 사람이 술이 첨가된 안주를 먹는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 것이다. 실은 고까짓거 먹는다고 무슨 큰일이 나겠냐만은 그래도 나름 열심히 지키고 있는데, 열 받을 것이다.


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술이 땡긴다. 생각난 김에 오늘 저녁에는 웰치스 한잔으로 세상을 다 가진 기분 좀 내 봐야겠다.


7년 전 어느 날 술자리 망상.

작가의 이전글 무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