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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May 21. 2021

집 청소

마음이 우울할 땐 몸도 함께 우울해진다. 축축 늘어져있고 싶은 것이 한 여름의 녹은 아이스크림 같다.


원래도 살짝 게으른 데다 몸도 안 따라주니 집이 엉망진창이다. 설거지도 쌓여있고 거실(부엌의 남은 공간)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컴퓨터 책상은 백수 주제에 서류가 가득 쌓여있고 그나마 누워있는 침대와 냄새나는 게 싫어서 씻을 때마다 청소하는 화장실은 깨끗하다. 아 물론 화장실에서 자라고 하면 잘 순 없다.

요즘은 잘 치우는 편이지만 이렇게 한참 우울할 때는 집이 집인가 싶었다. 문제는 생각보다 불편하다는 생각이 없었다는 거다.


또 집이 악의 구렁텅이로 빠질 기미가 보여서 잉어님이 주신 기운을 받아 정리를 했다.

펴놓고 접어놓지 않은 밥상을 접어놓고, 설거지를 하고 냉장고에서 비울 것들을 버리고 종이 쓰레기를 정리하고 스티로폼 박스의 테이프를 다 떼어내고 쓸고 닦고 하니 숨겨진 영토를 찾을 수 있었다. 이 넓은 거실을 이런저런 것들로 땅따먹기 하고  있었다.

보기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 치우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오, 여기가 이렇게 넓었나?"

 어지르는데 일등공신인 동생이 치우는 내내 쭈뼛쭈뼛하더니 한 마디 던졌다. 원래는 등짝 스메싱 각이지만 치운 내가 만족하니 넘어갔다. 그래도 시킬 건 잔뜩이었다. 모아진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다.

커다란 덩치와 다르게 비위가 약해서 음식물쓰레기는 못 버리는 녀석이니 힘쓰는 일을 몫으로 줬다.


거의 다 버리는 게 일인 청소는 참 쉽고 좋다. 물건을 잘 못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건 미련이 가득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고 어릴 때 있었던 사건이라면 사건이라고 할만한 일에 의해서 그런 것 같다. 맘먹고 버리면 잘 버리는 것 같기도 한데 사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언젠가는 꼭 비우는 청소를 할 것이다. 그 언젠가가 언제가 될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그때는 물건뿐 아니라 이 뿌옇고 손에 잡히지도 않은 기분 나쁜 감정들도 같이 버릴 수 있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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