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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May 22. 2021

속초 가는길

버스로 속초 가는 길. 아주 오래간만에 왕복 4시간이 넘는 버스를 타면서 한숨도 자지 않았다. 

횡성도 들리고, 홍천도 들리고, 인제도 들리고, 인제 원통('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의 그 원통), 용대계곡을 들러서 간다. 장장 2시간을 달려서 가지만 밖의 풍경을 보면서 가면 전혀 하나도 지겹지 않다.

오른쪽으로 펼쳐져 있는 여러 이름의 하천들과 고개를 젖혀야 볼 수 있는 산들, 비 오는 풍경은 여행을 더 설레게 한다. 인제에서 속초로 넘어가는 길목의 커다란 바위 산은 내가 지나가고 있는 이 곳이 한국이 아니라 다른 곳인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살짝 이세계를 다녀왔을지도 모르지.


인제의 소양강은 물수제비를 뜨고 싶다는 생각이 온몸에 들었다. 어깨가 아파도 좋으니 납작한 돌멩이를 던져서 통통통 물 위를 떠가는 희열을 느끼고 싶었다. 힘 조절을 하지 못해서 풍덩 빠져도 괜찮다. 그건 그 나름대로 신나니까. 돌 던지기가 신나는 서른네 살이다.


그리고 아직 백수로서의 삶을 만끽하지 못하는 나는 처음 보는 '고무보'에 눈길이 갔다. 일개미들에게 고무보가 있냐고 묻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내가 그동안 못 보고 살았던 것이 많았음을 깨달았다. 많이 봤고 안다고  생각했는데 즐기는 분야인 산림이 아닐 때는 시야가 좁았던 것이다. '더 공부해야 해'라고 생각이 든 것을 보니 아마 오롯이 백수가 되는 것은 다 틀렸구나 싶었다.

더구나 하천 중간의 모래톱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를 자르고 있는 모습에 분노했고, "어? 흙탕물? 공사 하나?"라고 중얼거리자마자 공사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보는 순간 오탁방지시설도 하지 않고 비가 오는데 공사를 감행하고 있음에 또 분노했다. 언제쯤이면 저런 공사를 보면서 조금은 덜 화낼 수 있을까?


다시 감성적으로 돌아오면.. 차창 밖에는 비가 내렸다. 장대비가 아녀서 밖은 더 선명했고, 계곡에는 물안개가 곧 신선(혹은 요정)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목적지가 아닌 것을 알고 있지만 내려서 풀냄새와 비 냄새와 흙냄새를 맡고 싶었다. 손에 톡톡 떨어지는 비의 감촉도 느껴보고 싶었다. 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감질났다. 이런 풍경을 보고 있자니 정신줄을 꽉 잡고 있지 않았다면 '저 여기서 내려요'를 외쳤을 것이다. 

왜 버스 회사는 용대리 백담사 입구에 정류장을 만든 것일까? 필히 농간이 있었을 것이다. 속초행 버스 기사님들은 승객들이 홀려서 내리는 걸 붙잡는 교육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특히 비 오는 날은 더.


돌아오는 길은 같은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 가는 길과 반대의 풍경을 즐길 대로 즐겼다. 다음에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서 거꾸로 보는 풍경을 즐겨보리라 마음먹었다. 기대의 마음이 솟아올랐다가 몽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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