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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터칼의 편지

by 라라감성

목요일 밤

휴가를 냈다며 주말에 제주 여행을 가자는

신랑의 한마디에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여행은 좋지만

현실적인 고민과

체력의 문제로

여행을 선 듯 좋아하지는 못하는 나다.


하지만 신랑이 가자고 하면 짐을 싼다

떠나고 나면 언제나 좋았기에...


금요일 바로

아이 학교에 체험학습 서류를 제출하고

토요일 급 떠난다.


처음에는 맘이 무거웠으나

문득 제주의 예쁜 풍경에서

새로운 작업들을 해보고 싶은 생각에

맘이 들뜨기 시작했다.


작업 가방을 싼다.


물감, 연습용 종이, 작품 용종이..... 등등.. 아!

그리고 칼!!! 그래 커터칼!

뭔가 바로 만들어서 새로운 것을 해보자!


아껴 쓰던 칼날도 오랜만에 새로 바꾸어주고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무슨 일이 닥칠지 그때는 전혀 생각도 못한 채...

20년간 동거동락을 함께한 커터칼이다. 비싸고 좋은칼은 아니지만 오래 함께해서 정든 친구다.


김포공항 보안검사대에

짐을 올리고 나오는데

검사관이 말한다.


"가방 안에 필통이 있나요?"


"네"


"필통을 열어보겠습니다"


"네"


"이 커터칼은 기내 반입 급지 품목입니다.

내려가서 화물로 부치거나 버리셔야 합니다..."


"아...ㅠㅠ 네..... 아... 아.... 아..... 음......

아... 음.... 버.... 려 주세요..ㅠㅠ"


이런 적은 처음이다.

맞다 커터칼은 기내 반입 금지 품목이다.

깜빡 잊고 있었다.

작업할 생각에 들떠서... 그만...


잠시 망설이고 결국 버려진

커터칼과의 갑작스러운 안녕을 고하며

비행기를 기다리며 드로잉을 한다.

뒷편에 제주행 비행기가 보인다


신랑이 캐리어에 옷과 모자를 걸어두었다.


앗!

숙소에 도착해 필통을 열어보니

커터칼 꼭지가 남아있다.


신기한 일이다.


커터칼은

버려질 운명을 예견했던 것일까?

꽉 맞아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 꼭지인데

.

.

.



어찌 된 것일까?


가방을 싸며

칼날을 바꾸면서

단단히 야무지게 끼운 기억이 난다.


너무 아쉬워하는 나의 표정에

검사관이 꼭지만 빼서 넣어 준 것일까?


냉정하게 버리는 검시관의 모습이 떠오른다.

냉정함 뒤에 따뜻함이 있던 것일까?

반갑다

반가움에 이리저리 돌려보며

연신 사진을 찍어본다.


아쉬움을 예견한

커터 칼의 서신?

미안해

잘 가

.

.

.

그리고

고마워

.

.

.


Tip

저의 아쉬움을 읽으신 경험자님께 좋은 팁을 들었습니다.

검시관에게 커터 칼을 압수당하게 될 경우

그 자리에서 칼날만 제거하면 가지고 탈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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