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과정을 한 단어로 설명하면 선택이다. 점심메뉴를 선택하는 일상적인 것부터 나의 직업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까지 크고 작은 나의 선택이 모여 내 삶을 창조한다. 그런데, 이 선택의 순간에 초대받지도 않고 끼어드는 수많은 조언자들이 있다.
“그냥 내 말 들어.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둬.”
“더 늦기 전에 결혼해야지. 지금도 늦었다.”
“아이를 안 낳겠다고? 나이 들어 혼자 외로워서 어쩌려고...”
이처럼 원치 않는 충고와 조언을 들으면 누구나 기분이 상하고 힘이 빠진다. 때로는 내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닌지 나 자신을 의심하고 두려워지기도 한다. 원치 않는 조언을 하는 사람은 앞서 말했던 ‘에너지 뱀파이어’에 해당되지만, 일일이 에너지 뱀파이어로 선을 긋기 어려울 만큼 충고와 조언은 일상에서 넘쳐난다. 게다가 그 조언들은 대부분 사랑 또는 선의의 탈을 쓰고 있다. 조언을 듣는 사람 역시 ‘나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하는 거겠지’라는 마음으로 불쾌함을 애써 무마시키려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도움은 조언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결정하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믿어주는 것이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는 자유이고, 자유의 핵심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에 있다. 아주 작은 사안일지라도 타인의 삶의 결정권을 허락도 받지 않고 침해하는 것은 자유권을 침범하는 매우 무례한 일이다.
그런데 도움도 되지 않는 무례한 충고와 조언을 왜 모두들 일상적으로 하고 있을까?
생각이 유연하고 열려있는 성숙한 사람일수록 타인에게 함부로 충고나 조언을 하지 않는다. 일상적으로 충고나 조언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좁은 프레임에 갇혀서 프레임 밖의 것들은 틀렸거나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 좁은 프레임은 그 사람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안전지대’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생각하는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다시 자신의 ‘안전지대’ 안으로 밀어 넣으려 충고나 조언을 한다.
돈이 안전지대인 사람은 모험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현실 개념이 없다’며 직장을 그만두지 말라고 충고한다. 가족이 안전지대인 사람은 혼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나중에 후회하니 결혼부터 하라’고 조언한다.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고 있지만, 결국 자신의 두려움을 투사하고, 자신에게 좋다고 느끼는 것을 강요하고 있을 뿐이다.
충고와 조언 중 정말로 도움이 되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고 대부분은 쓸모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말들에 귀를 기울인다. 행여나 내가 놓치고 있거나 모르는 부분을 말해 줄까 봐, 행여나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인데 내가 듣지 않아서 잘못될까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충고와 그렇지 않은 충고를 충분히 구별할 수 있다. 도움이 되는 충고는 당장은 아프고 수치스러울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 깊은 곳에서 인정되고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도움이 되지 않는 충고는 자신의 선택을 침해당한 불쾌함과 반발심만 불러일으킨다.
도움이 되는 충고를 놓쳤다가 잘못될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로 사는 길에서 잘못된 선택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에는 옳은 길이란 없다. 옳은 길이 없으니 틀린 길도 없다. 그저 각자 자신을 찾아가는 고유한 선택과, 그로 인한 경험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편한 충고를 참고 들을 필요는 없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나 자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활동 :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내 안의 나에게 얼마든지 충고와 조언을 얻을 수 있다.
- 지금 고민되는 일에 대해 80살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무엇이라 말해줄지 적어보자.
- 8살의 나는 현재의 나에게 그 일에 대해 어떤 의견을 말해줄지 반대 손으로(위의 질문에 오른손으로 적었다면 이 질문에는 왼손으로) 적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