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묵상

꿈에 얀이가 나타났다

by 창조성 강사 라라


30대까지 내가 꾸는 꿈의 주제는 대부분 불안이었다.

전쟁으로 도시가 무너지고, 집이 화염에 휩싸이고, 또는 폭풍우와 쓰나미가 덮치고, 쫓기고, 총에 맞고, 사람들의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우울증이 심할 때 꿨던 꿈들은 블럭버스터급 재난영화가 따로 없었다.

면허를 딴 후 제일 많이 꾸는 꿈은 자동차의 브레이크가 고장나서 사고가 나는 것이었다.

아. 라식수술을 한 후부터는 눈이 안보여서 다시 안경을 써야 보이는 꿈도 많이 꿨다.


30대 내내 내면아이, 태중경험, 전생치유 등등 온갖 치유작업을 경험하고나서 이전에 꾸던 꿈이 모두 사라졌다. 그대신 40대에 자주 꾸는 꿈은 우리집 얀, 강, 별 세 마리의 동물 또는 기타 여러 동물들을 내가 잘 돌보지 못하는 꿈이다.

오늘 아침 꿈에서는 2년전 세상을 떠난 얀이가 등장했다. 꿈에서 며칠동안 얀이가 사라졌는데 내가 찾을 생각도 안하다가, 문득 다른 집에 얀이가 묶여있는 걸 발견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얀?'하고 불렀는데, 얀이가 꼬리치며 나를 알아봤다. 묶인 줄을 풀어주고, 다시 집으로 데리고 돌아왔다. 얀이 옆구리에는 큰 상처가 있었고, 치료해줄 방법을 찾아 동동대다가 깼다.


동물을 방치하는 꿈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나의 무의식적 강박을 보여준다.

나는 책임감이 강하다. 한번 맡은 일은 왠만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다.

강한 책임감 때문에 대충하지 못한다. 포기해도 되는 일을 중간에 포기하지 못한다. 책임지려 애쓰다가 나를 소진시킨다. 책임질 필요가 없는 일도 열심히 책임지다가 호구가 되버리기도 한다.


잠에서 깨서 얀이가 등장한 꿈을 곱씹어보았다.

나는 무엇을 (쓸데없이) 더 책임지려고 압박을 느끼고 있을까.

조금 더 편하고 자연스럽게 해도 되는데, '책임지지 못하는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으려 애쓰고 있을까.

책임이라는 가치에 매여서 지나치게 통제하고 있는게 뭘까.


생각해보니 또 모든걸 꽉 쥐고 있었다. 워크숍이 내가 예상한 만큼 잘 굴러가야 하고, 매사 최선보다 더 최선을 다해야 하고, 예정된 일정을 예정시간 안에 소화해야 하고, 집은 깨끗하게 정돈되어야 하고, 내가 하겠노라 떠든 일에 대해서도 빨리 마무리를 져야 하고.....


오늘 아침 꿈에 찾아온 얀이가 나를 일깨워준다.

더 힘을 빼고 하라고. 내가 다 통제하지 않아도 된다고.

완벽하게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고맙다 얀이.

다음에는 꿈에 나와서 그냥 나랑 즐겁게 놀다가 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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