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느긋하게 3주 살기

제주살기 16일: 캘리포니아 서귀포

by 달문

아침의 시작은 빨래. 세탁기 돌아가는 동안 두부김치참치볶음과 알배추로 아점 챙겨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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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배추는 좋은 채소다. 무엇이든 얹어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빠네처럼 ‘먹는 접시’ 느낌을 주는데 건강하고 아삭하다. 제주에서 부족한 채소 용량을 알배추와 토마토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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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더워서 첫 일정은 카페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숙소 근처 카페 젠타일스에서 치즈케익과 아이스 라떼 섭취했다. 관광지 카페가 아닌 동네 카페에서 보내는 일상이 특별하다. 바다가 보이지 않고 유명 관광지도 없지만 조용하고 바람 통하는 이 곳에서 무언가에 골몰해 있다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하는 시간이 소중했다. 젠타일스는 이때 효돈동에 있다가 지금은 표선해수욕장 근처로 이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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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엉 해안경승지에 왔다. 오래 전에 왔을 때 좋았던 기억이라 다시 걸어본다. 시작점부터 끝까지 가보고 체력이 남으면 올레길 5코스를 이어서 더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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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터널처럼 울창하게 머리 위까지 자라서 볕을 가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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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터널 사이로 빼꼼 보이는 푸른 바다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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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왕꿈틀이처럼 나왔지만 그 유명한 한반도 포토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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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꿈틀이면 어떤가. 바다가 이렇게 푸르고 깊은데. 큰엉 해안 경승지를 걷다보면 곳곳에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사잇길들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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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 가운데 주황색 동그라미 하나가 떠 있다. 해녀들이 일할 때 사용하는 부력 도구인 테왁이다. 깊은 바다 밑 어딘가에 해녀가 열심히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는 중일 테다. 귀를 기울이니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 같은 숨비소리(해녀들이 오래 잠수했다 물 위로 나와 숨 쉴 때 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바다 밑에서 물질하는 하나의 사람을 떠올리는 순간 주황색 동그라미도 특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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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였다. 위 사진의 바위는 호두암와 유두암이라고 한다. 유두암까지는 굳이..? 싶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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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부드러워 보이는 나뭇잎을 만나 쓰다듬는다. 어제 치유의 숲을 걸으며 지도사님이 여린 나뭇잎을 지닌 식물을 골라 손가락으로 만져보라고 하셨었다. 부드럽고 연하며 살짝 털이 있는 듯 부슬하게 느껴졌다. “노루 귀를 만지는 것 같죠?”라는 물음에 노루 귀를 만져본 적 없지만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큰엉해안에서 만난 이 나뭇잎 이름은 몰라도 여린 촉감만은 지금도 손끝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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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하게 보이는 섶섬을 발견한다. 게우지코지, 외돌개, 큰엉해안, 새연교에 이어 큰엉해안에서도 섶섬을 알아보다니, 이제 어디서나 널 발견할 수 있어. (섶섬: 섬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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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엉해안 산책로를 지나 이어진 제주올레 5코스를 조금 더 걸으며 마을어장으로 개방된 바다를 구경한다. 편의점을 찾으려 마을길로 들어서니 빌라와 아파트들이 꽤 보여 습관적으로 시세를 검색했다. 서귀포에 머무르는 동안 어떻게 하면 이곳에 더 자주 올 수 있을까 자주 생각했다. 집을 사놓으면 어쩔 수 없이 오지 않을까? 부자 마인드 같아 보이지만 그냥 검색과 공상 많이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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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이온음료 마시며 에너지 보충한다. 옛날에 동생이 자전거 전국일주하면서 여러 이온음료를 마셔봤는데 짧은 시간 내 기운이 나는 게 바로 파워에이드였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기력이 딸릴 때면 왠지 게토레이나 포카리 아닌 파워에이드를 사 마시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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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큰엉해안 입구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중 갑자기 펼쳐진 장면이다. 카페에 전시해놓은 노란 차와 커다란 야자수, 길 끝에 걸려 있는 푸른 바다가 캘리포니아 같다. 서귀포가 한국의 캘리포니아였어? 왜 아무도 그런 말을 안 해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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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정자에 앉아 쉬는데 신기루처럼 남원소바라는 간판이 보였다. 계시를 받았으니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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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소바에서 먹은 판메밀이 서귀포에서 먹은 음식 중 내 안의 일등이었다. 오래 걸은 후 시원한 메밀을 먹어서였을까. 사장님의 친절함과 쾌적한 가게 분위기도 한몫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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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아니면, 먹고 나와 바라본 가게 앞 풍경에 취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석양 지는 야자수 하늘이라니..이 동네는 감귤이 지천에 나고 야자수 투성이며 바다는 맑고 깊고 파랗다. 트럭들은 급한 일이 없는지 시속 20 이하로 달린다. 바다에선 해녀 테왁이 떠다니고 숨비소리가 들린다. 여기에서 머무는 동안 캘리포니아 사람처럼 긍정의 화신이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난 생각을 고쳐먹었다. 서귀포가 한국의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캘리포니아가 미국의 서귀포다.(국뽕을 넘어선 제주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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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메밀만 먹었을리가. 남원소바에서 해물파전 포장해 숙소로 돌아와 남은 막걸리와 함께 먹었다. 오징어와 새우가 듬뿍 든 파전 한 입 먹고 막걸리 마시며 정말 뜬금없이 제이슨 므라즈의 공연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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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최근이 아닌 오래 전 ebs 공감 버전이 보고 싶었다. 무려 2006년 공연이다. 한참 듣다 문득 그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이후로도 워낙 국내에서 알려진 히트곡이 많았지만 공감 이후 거의 이십년이 흘렀는데 음원만 들었지 라이브 무대를 굳이 찾지 않았다. 살펴보니 그는 자체 유튜브에 밴드와 함께 꾸민 라이브 영상들을 활발히 올리고 라방도 열심히 하는 모양이었다. 그 중 하나를 골라 틀었다. 26분짜리 무대인데 눈가와 입가에 주름이 생겼지만 생기 있는 눈빛과 장난스러운 제스처는 여전했다.

‘wake up everyone’으로 시작하는 <make in mine>을 듣는데 가사에 유독 집중하게 되었다. 재기발랄 실력있는 뮤지션의 시작을 흥미롭게 보다가 그를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마흔여섯이 된 그는 그때와 다를 게 없이 계속 음악을 만들고 발표하고 활동하는 중이었다. 유머러스하고 편안하지만 루즈하지 않게 말이다.

서귀포 캘리포니아를 거닐다 막걸리 마시며 제이슨 므라즈로 끝내는 오늘의 포스팅은 무척이나 의식의 흐름 그 자체구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날 이후 내 여행 BGM이 되어버린 제이슨 므라즈의 <make in mine> 디럭스 에디션 버전 라이브가 담긴 무대로 마무리해야지.

https://youtu.be/7nsqw_w37Ss?si=GW-bMwmkh2LAdhf5

<make it mine>은 1분 35초부터 감상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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