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기 17일: 다정한 인사
서귀포시와 더나은스테이펜션에서 보내는 날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내일 오전 체크아웃이니 사실상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며칠 전부터 떠나기 싫었다. 섬 한 바퀴를 돌아보려는 생각이어서 제주살기 마지막 4일 숙소를 제주시로 예약했지만,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내내 편안하고 즐거워 떠나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는 거다. 그러나 가면 또 다른 좋은 일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우선 오늘을 즐겨보자.
요즘 앱테크를 3개 돌리는 중이다. 토스 만보기, 캐시워크, 발로소득. 제주에서는 하루 평균 만오천 보 이상 걸었기 때문에 쏠쏠히 쌓인 포인트로 뚜레주르에서 식빵 샀다. 멋대로 만든 프렌치토스트와 야채 털어먹으면서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한다. 궁금했던 동네 카페에서 책 읽는 걸로 시작해본다.
한적한 골목 사이에 자리한 오하효라는 카페다. 인테리어며 사장님 스타일이며 풍기는 향까지, 멋쟁이들이 가는 카페 같은데 조용한 동네 하효동에 있다는 점이 사랑스럽다.
에티오피아 드립커피와 생초코 시켰다. 생초코를 발라먹게끔 크래커가 나온다. 듬뿍 발라 크래커 물고, 뜨거운 드립커피를 마시면 달콤쌉싸름한 조화에 절로 웃음 나온다. 책 읽고 있는데 사장님이 "그 자리보다는 저 자리 뷰가 더 좋아요" 하셔서 옮겼다. 그 뷰는 창 밖 뷰가 아닌 카페 내부 뷰를 말하는 것 같았는데 확실히 그러했다. 내부가 멋진 카페는 자체적으로 얼마든지 뷰를 만들 수 있군.
인상적이었던 건 음악이었다. 대충 봐도 값져 보이는 음향 기기로 공간이 채워지는데 고요하면서 웅장하고 편안해지는, 명상에 어울리는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그 중 두 곡이 들어와 담아놓고 가끔 듣는다.
https://youtu.be/w9TpOSPbJRI?si=OnQT2CONQVYO7tcU
https://youtu.be/3L977bx4NYk?si=iffodcty33XokTmu
오늘은 새로운 장소에 가기보다 좋았던 곳을 한 번 더 가고 싶다. 외돌개를 낀 올레길 7코스를 걷자. 며칠 전에는 카페 60빈스부터 외돌개까지 역방향으로 걸었으니 이제는 외돌개주차장부터 정방향으로 조금 가보기로 했다. 내일 체크아웃 후 제주시까지 먼 길 운전해야 하니 무리하지 않는다.
외돌개주차장부터 걷다 보면 멀리 새연교와 섬들이 보인다. 내가 거쳐온 곳들을 발견할 때마다 알고 지낸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모르는 풍경과 아는 풍경의 차이가 크다.
외돌개도 안녕~ 또 만났네
전망대 근처 정자에 앉아 잠시 쉰다. 사람이 지나가지 않는 틈 타 요가 스트레칭 해보고 호흡도 천천히 내쉰다. 정면으로는 바다가 보인다. 여유롭게 앉아 있으니 제주 와서 들은 인사들이 떠올랐다. 오늘 들른 카페 사장님은 차를 자리에 가져다 주시며 "좋은 시간 보내세요"라고 했고, 며칠 전 치유의 숲 프로그램을 마친 지도사님은 마지막에 "즐거운 여행 되세요"라고 하셨다. 별거 아닌데 혼자 여행하느라 사소한 인사들이 다정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냥 '맛있게 드세요', '안녕히 가세요' 말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 번 더 듣는 사람을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남은 치킨(페리카나 한 마리를 지어다 며칠은 먹었습니다)과 남은 재료 다 때려넣고 끓인 우동전골, 논알콜 칭따오로 서귀포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한다. 지금 보니 술 안 마신 날이 드물었네. 그래도 양심상 논알콜을 찾아 마셨군. 무알콜 맥주는 현대 문명의 선물이다. 오늘이 제주 와서 가장 체력과 일정이 느슨한 날이 아니었나 싶다. 온화하고 느슨한 서귀포에서의 시간은 지나갔다. 이때만 해도 제주시에서 보낼 날들이 그리 어두울 줄은 미처 몰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