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느긋하게 3주 살기

제주살기 19일: 편한데 불편해

by 달문

제주살기의 마지막은 제주시 레지던스에서 보내고 있다. 취사 가능한 레지던스지만 취사를 하려면 2만원을 내야 한다. 2만원+요리할 식재료값을 내면서 요리해 먹을 메리트가 없어서 그냥 사 먹기로 했다.

아점으로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어서 샐러드 가게를 검색했다. 제주시로 온 후에 놀라웠던 점? 글쎄, 서브웨이와 버거킹 맥도날드가 도보 10분 거리 이내에 있다. 서귀포시였다면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갔어야 하는데 말이다.

샐러드바스켓의 연어스테이크 포케로 건강한 식사를 마친 후 동네 카페에서 커피와 크로플을 먹었다. 근데 이건 먹지 말걸 그랬다. 제주 와서 처음으로 괜히 한 소비라고 생각되었다. 제주살기하면서 불만스러운 곳들은 굳이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 그저 내 습관에 한 번 브레이크를 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자. 밥 먹은 후 커피와 디저트류를 챙겨 먹는 일을 내가 관성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정리 전문가의 모토처럼, 나도 습관처럼 디저트를 시키기 전에 ‘설레지 않으면 먹지 마라’는 말을 새기는 건 어떨까?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날이 흐리고 간혹 비가 온다. 제주에서 비 오는 날에는 바다보다 숲이 낫다. 근처 한라수목원에 가자.

한라수목원은 번화한 제주시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했다. 제주시 한복판에 이렇게 녹음이 우거진 넓은 공간이 있다니 소중하다. 주차하고 3분만 걸으면 새소리 가득한 숲을 걷게 된다. 테마별로 조성된 정원을 지나 산림욕장으로 향했다.

산림욕장은 광이오름 정상으로 갈 수 있는 산책로로 다소 가파르지만 10분 내로 오를 수 있다. 제주 와서 초반에 올랐던 지미봉이 힘든 정도의 기준이 되었는데, 광이오름은 지미봉에 비하면 가벼운 산책 수준이다.

놀랍게도 위 사진이 광이오름의 정상이다. 평소라면 한라산 자락도 보이고 멀리 바다도 보인다는데 그저 흐릿할 뿐이었다. 며칠 후 조금 상태가 나은 풍경을 보게될 예정이었지만 이때는 사방을 둘러봐도 그저 안개뿐이었다.

미스트 뿌리는듯 은근하게 비가 내려 촉촉한 숲을 걷는 데에 의미를 두자. 송이길을 밟아 체력단련장으로 향했다.

이 물은 삼다수인 거다. 유독 물맛이 개운하고 시원해 여러 번 마셨다.

스트레칭 하고 나니 아령이 보여 팔, 어깨, 등운동 차례로 했다. 제주살기하면서 걷기만 했지 근력 운동은 할 수가 없었는데 여기 와서 시늉이라도 하니 몸이 풀어지는 듯했다. 내가 아령을 보고 반가워하는 때가 오다니, 그것도 삼십대 후반에 와서,,?? 인생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반가운 마음과는 별개로 운동했다고 금방 노곤해진다. 내 체력 때문이 아니라 아마 안개 탓일 거야. 벌써 숙소 가긴 아쉬워 근처 제주도립미술관에 들른다.

제주도립미술관은 전시 교체 기간이라 무료 입장이었다. 이건희 소장품 전시를 며칠 후에 한다고 하니 집에 가기 전 기회가 되면 와보리라.

장리석기념관만 관람이 가능했다. 장리석의 작품 중 <오후의 뜰>이 좋았다. 빛이 드는 평상에서 낮잠 자는 소년의 모습이다. 평온해 보인다. 나도 그 길로 숙소에 돌아가 두어 시간 낮잠 잤다.

비 오는 날에는 칼국수지. 제주에 있는 일산칼국수에서 닭칼국수를 먹었다. 따뜻하고 짭짤하고 진했다. 칼국수의 미덕을 모두 갖추었다는 소리다. 칼국수는 내 소울푸드다. 제주시로 넘어온 이후 숙소 환경부터 날씨까지 내 마음같지 않았다. 바로 제주공항으로 갈 게 아니라면 굳이 번화가에 숙소를 잡을 필요가 없었는데, 오래 전 예약할 때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불야성 같은 도시는 밤에 활동하기엔 편했지만 제주도까지 와서 4일 동안이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서귀포의 고요와 불편함이 그리웠다. 그렇지만 취소 수수료나 얼마 남지 않는 일정상 돌이킬 수는 없었다. 이 안에서 최선으로 즐겨보자. 뜨끈한 칼국수를 먹으니 불러오는 배와 함께 영혼의 허기도 채워졌다.

문명을 즐겨보려 들른 제주시의 이마트. 복도에도 해녀가 그려져있다. 내일은 마지막으로 바다를 보러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흐려도 괜찮으니 비만 오지 않기를 바라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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