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느긋하게 3주 살기

제주살기 3일: 테라스 독서의 기쁨과 처음 만난 맑은 바다

by 달문

제주살기 3일차.

알람보다 확률 높은 기상 시스템인 조식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 아침 8시 50분에 일어났다.

두베 조식 2일째 - 파니니와 치즈케익

오늘부터 엄마가 3박4일 머무르기로 했다. 페이스 조절 위해 숙소 테라스에서 책 읽어야지. 오랜만에 해가 들기 시작해 손빨래한 옷가지들도 살짝 널어두었다.

두베하우스는 방 크기가 아주 넓지는 않지만 방 앞에 테라스가 있어 오늘처럼 해가 드는 날에는 앉아 멍 때리기 좋았다.






제주 와서 읽으려 아껴둔 <짝 없는 여자와 도시>를 처음 꺼낸 아침이다. 첫 장부터 저자 특유의 냉소와 유머가 섞인 문장에 꽂혀버렸다. 자기 친구를 ‘자기 불행에 대해서라면 조예가 깊다’ 소개하고, 자신이 무언가를 소유하는데 무관심한 이유를 그 모든 게 스스로를 극도의 혼란 속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라 분석한다.

이날 저녁 쓴 일기가 그날 테라스에 앉아 읽던 순간의 기분을 말해준다.

테라스에서 햇빛 쬐며 책 읽는 상상 속 장면이 가능한 아침이었다.

제주살기 중이지만 투표는 해야지. 구좌읍 주민센터 가서 사전투표한 자랑스러운 경기도민이다.

오후 비행기로 도착할 엄마를 데리러 세 시간 후 공항에 가 있어야 한다. 근데 제주 온 지 3일 만에 해가 떴으니깐 바다를 보고 싶어. 숙소 근처 세화 해변에서 해맞이해안로를 따라 김녕쪽으로 드라이브하며 천천히 공항 방향으로 가보기로 했다.

내내 흐려 회색 바다만 보다 눈부신 바다 만나니 웃음이 나왔다. 내적 웃음 아니고 그냥 겉으로도 웃음이 막 나오대. 날씨가 최고 복지다. 해안도로 드라이브할 때 주의할 점. 전방주시 안 하고 바다 보면서 가다간 핸들이 바다쪽으로 틀어질 수 있음. 나뿐 아니라 앞차도 비틀비틀. 다들 날씨에 취했나 보다.

레이오버 카페의 아이스 라떼와 바나나 커스터드

코난해변 근처 카페 레이오버에 들렀다. 해맞이해안로 따라 달리다 맑은 바다색에 흥분해 옆길에 차 세우고 사진 찍던 바다 바로 앞 카페다. 경유지에서 바다 멍 때리며 진정하는 시간 가졌다. 이름 잘 지었다. 일부러 찾지 않아도 바다 따라 지나다 짧은 휴식이 가능한 곳.

디저트는 디저트고 점심은 챙겨야지. 공항 쪽으로 조금 더 이동해 함덕 섬오름해물라면에서 문어라면 먹었다. 문어와 해산물이 실하고 면 양도 많아서 든든하다. 함덕서우봉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문어라면을 먹는다니, 성공의 맛 아닐까 이게? (날씨 좋아서 나댐 주의)

가게 바로 앞이 이런 풍경이었다고요. 좀 나대도 이해해주시죠?

에메랄드빛이라는 뻔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함덕 바다 실컷 눈에 담았다. 가마우지인지 무언지 모를 새가 잠수했다. 언제 물 밖으로 나올까 기다리는데 예상치 못한 먼 지점에서 고개를 쏙 내밀었다. 수면 아래에서 날 듯이 멀리 헤엄칠 그 모습이 신통해 한참을 보았다.

이제 정말로 공항으로 가야 한다. 원래 제주살기는 혼자 계획했는데 숙소와 차가 보장되어 있으니 엄마에게 편히 왔다 가라 제안했다. 내가 모셔놓고 막상 혼지인 시간이 줄어든다 생각하니 살짝 아쉬웠다. 그치만 우리가 언제 이런 시간을 가져보겠어.

무사히 엄마를 공항 1번 게이트에서 만나 픽업했다. 해물라면이 채 소화되지 않았지만 환영의 저녁식사는 또 별개지. (이 논리로 하루 네 끼 먹기가 가능했으며..)

숙소인 세화까지 가면 어두워질 것 같아 다시 함덕으로 와 김치찌개 주는 도톰한고기돈돼지에서 얌~ 엄마 오니 다양하게 먹을 수 있구만.

숙소 가기 전 잠시 함덕의 해 지는 모습 감상.구름이 천사 날개 모양으로 뻗어 있어 그런 컨셉으로 사진 찍었다. 내일부터는 어느 정도 관광객 모드를 장착해야 한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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