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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돈 Oct 08. 2017

나도 이효리처럼 멋지게 실패하고 싶다

6집 정규앨범 'BLACK' (2017) - 이효리

6집 앨범 선공개곡 'Seoul'
6집 앨범 타이틀곡 'Black'

이효리에게는 이른바 짝수 앨범 징크스라는 게 있다. 그간 홀수 앨범은 대중적으로 흥행하거나 평단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던 반면, 짝수 앨범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타이틀곡 '10 Minutes'으로 '이효리 신드롬'을 일으키며 청순 아이돌 그룹에서 섹시 여솔로 가수로 성공적인 출사표를 내밀었던 1집(2003)과 트렌드세터로서의 강박을 고스란히 짊어지며 해외 트렌드를 쫓기에 급급했던 2집(2006). 전작에 대한 반성으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건강하고 밝은 이미지를 부각하여 대중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낸 3집(2008)과 앨범 곡 상당수가 표절 판정을 받으며 그녀의 커리어에서 가장 뼈아픈 지점으로 기억될 4집(2010).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포섭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본인의 능력 범주 내에서 안정적인 프로듀싱 능력을 보여준 5집(2013)까지. 원래대로라면(?) 6집 앨범은 실패해야 할 수순이었지만, 나는 5집에서 보여준 그녀의 성장에 주목하며 '이제 징크스가 깨질 때도 되었다'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럼 6집의 성과는 과연, 어떠했는가? 1주일 남짓의 짧은 활동이긴 했지만 음악차트의 미적지근한 반응이나 평론의 냉혹한 평가로 미루어보아 6집은 역시 실패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앨범 소개글에서는 그녀가 제주도에서 생활을 하며 받은 영감을 이번 앨범에 반영했다고 하지만, 이는 제주도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분주하고 버거운 일상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에 침잠해 들었던 사유의 결과물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일렉트로니카와 힙합의 교집합쯤을 가리키고 있는 앨범의 전면은 대중성이라든가 제주도의 청명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어두운 색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제법 인상적이고 과감한 선택이라 할 만한데, 안타깝게도 음악 본연에서 오는 감흥은 그에 비해 인상적이지 못하다. 어둠의 분위기를 구성하기 위해 과도하게 힘이 들어간 프로듀싱과 맞물려 돌아가는 나지막한 보컬은 비록 의도된 것이라고는 하나 익숙해지기까지 인내심을 발휘하게 만드는 요소이고, 이는 결국 다시 가창력에 대한 논란으로 종결된다. 물론 가창력이 노래의 우위를 정하는 절대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곡의 몰입을 방해하고 제작자의 의도를 헤아려야 하는 지점까지 다다르게 된다면 이는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가사에 있어서는 처연하면서도 관조적인 정서가 주류를 이루고 군데군데 포인트가 되는 트랙에서 힘을 주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앨범의 정취에 적절히 녹아들고 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다른 곡들과의 변별을 어렵게 만드는 부분 또한 존재한다. 그러니까 이번 6집 정규앨범은 전반적으로 열심히 노력했다는 인상은 있지만,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도출해내진 못했다.


그럼에도 이번 앨범이 전작 짝수 앨범들의 실패와는 확연히 구분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앨범이 의도적으로 흥행에 대한 과욕을 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짧은 1주일의 활동기간 동안 이효리는 앨범 홍보 차원에서 열심히 예능 활동을 소화했으며, 앨범 활동 전후로 인간 이효리의 민낯을 드러내 보인 예능 '효리네 민박'을 히트시키긴 했다. 하지만 앨범 흥행에 관심이 있었다면 활동기간을 이렇게 짧게 잡지도 않았을 테고, 무엇보다 앨범을 비대중적으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이효리의 최근 행보를 가수 겸 엔터테이너로서, 그리고 사회에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물로서 유의미하고 최적화된 활동 양식을 물색하고 있는 과정으로 본다. 마치 이효리의 선배 격인 엄정화가 배우 활동을 병행하며 명맥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말이다. 인생의 전환기를 맞아 언제까지고 '젊고 아름다웠던 지난날처럼 치열하게 해내가기 어려운' 그녀에게는 외적으로는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법한 최적의 활동 양식을 구상해야 하고, 음악 내적으로는 가수로서 롱런하기 위한 성찰과 도전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짝수 앨범들이 범했던 우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따라서 징크스의 시기를 맞이하여 의도적으로 발현된 실험이건 아니건, 이번 앨범의 실패를 반쪽짜리 실패 정도로 규정짓고 싶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짐작건대 아마도 그간 대중의 아이콘으로서 소명을 다해야 했던 지난날의 이효리에게는 가수로서 어떤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가창력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그녀였기에, 그녀는 댄스 퍼포머로서의 역량을 더욱 부각시키거나 본업 이상으로 잘 나가는 엔터테이너로서의 개성에 적당히 부대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이효리는 본인 스스로가 가수라는 직함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3집 활동 때는 '이발소집 딸'이라는 곡에 자전적 가사를 입힘으로써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고, 결과가 심히 안타까웠을 뿐이지 4집 시절부터 이미 공동 프로듀싱에 이름을 올리며 아티스트로서의 자의식에 박차를 가하던 그녀였으니까.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팬이라면, 적어도 실패한 이번 앨범을 통해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녀가 다른 무엇도 아닌 가수로서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이번 활동의 값진 경험을 바탕으로 차기작인 7집 앨범에서는 다시금 멋지게 홈런을 날릴 그녀의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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