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시대 (2015) - 옥상달빛
뮤직비디오 링크: https://youtu.be/fu_cjlJpHSI
옥상달빛의 치유공식은 가식을 철저히 거부하고 대립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이러한 대립구도는 겉으로는 가식적으로 웃으면서 달콤한 멜로디를 짚어내지만, 가사는 냉정하고 싸늘한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이중 삼중의 부조화를 뭉게구름처럼 피어나게 한다.
올해 5월에 발표한 본 작은 그러한 옥상달빛의 기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때 전염병처럼 번졌던 웰빙이나 힐링과 같은 단어들이 실상은 살림 좀 나아진 것 하나 없는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우리네 피폐한 마음을 달래기는커녕 조소하게 만들었다면, 이들의 처절한 패배주의는 독기로 가득 찬 우리를 되려 얼빠지게 만든다. 모순되어 보이지만 이보다 더 완벽한 처방전을 어디서 찾을 수 있으랴. 진부한 표현이지만, 나는 그래서 이들의 음악을 '네오 힐링' 또는 '포스트 힐링'이라고 멋대로 칭하고 싶다.
가사적인 측면에서 덧붙이자면, 이들의 좌절은 어떤 이에게는 n포세대의 자기 최면으로 다가오고 어떤 이에게는 정치 세태에 대한 불신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그게 그건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해석이 어찌되었든 희망의 기운을 보일 듯 말듯 심어놓은 그녀들의 탁월한 센스다.
울지 마 네가 잠자코 있었으니까
옥상달빛은 모든 것을 외부의 탓으로 100% 맹목적으로 전가하는 대신, 자기 자신에 대한 약간의 책망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요즘 젊은 세대들은 시대 탓만을 한다'며 한탄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박처럼 들린다.
어차피 혼자 걸어가야만 한다면
눈 뜨고 잘 듣고 목소릴 내보면
그럼 지금보다 나아지겠지
일견 뻔한 소리를 평이하게 늘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맥락상 이 다짐은 울고 불고 지쳐 쓰러진 자의 추스름이다. '그래, 그래도 살아가야지. 남들처럼 빠르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천천히, 그렇게.'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호젓함. 인생의 밑바닥에서 온 몸을 쥐어짜 나온 이 위로보다 우리는 얼마나 더 나은 위로를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