コノヨノシルシ (2004) - BoA
음원 링크: https://youtu.be/Ga6f8fGjZKc
얼마 전 히든싱어 시즌 4 보아 편을 보았다. 평소에는 TV를 비롯한 동영상 매체를 잘 보지 않는 나인데, 보아가 나온다는 사실에 이유를 불문하고 챙겨보아야 할 의무감이 느껴졌던 것 같다. 팬의 입장에서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순정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가수의 데뷔와 성장을 죽 지켜봐 온 입장이라면 가수에 대한 애틋함이 배가되는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보아는 나와 같은 동년배가 아니던가. 보아는 나에게 있어 그야말로 나의 10대와 20대를 관통하는 선망의 아티스트인 셈이다. (그래서 히든싱어는 즐겁게 보았냐고 묻는다면, 1단계 미션 곡이었던 ID: Peace B를 제외한 나머지 곡에서 정확하게 보아를 짚어 내는 데 성공했다. 짜잔)
사실 나는 보아의 한국 활동보다는 일본 활동을 더 관심 있게 지켜본 팬이었다. 내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J-Pop으로 빼곡히 채웠던 점이 주된 이유겠지만, 사실 보아도 한국 활동에 있어 한국 정규 5집 앨범인 'Girls On Top'(2005)과 정규 6집 앨범 'Hurricane Venus'(2010) 사이에 상당한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본 활동에 귀추를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까지 일본에서만 8개의 정규앨범과 2개의 베스트 앨범을 발표한 보아이니 만큼 다수의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당연지사. 그중에서 이번에 필자가 소개하고자 하는 곡은 2004년에 발표한 2A 싱글 'Quincy'의 사이드 트랙, 'コノヨノシルシ (이 세상의 증표)'이다.
지금 보아를 아티스트로 정의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 일례로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최근작 한국 정규 8집 앨범 'Kiss My Lips'(2015)를 셀프 프로듀싱 한 그녀가 아닌가. 하지만 개인적으로 보아의 소싯적 아이돌스러움을 사랑하는 필자는 보아의 성장을 담아낸 이번 앨범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아이돌스러움이란 한국 앨범으로 치자면 정규 3집 앨범 '아틀란티스 소녀'(2003) 정도의 느낌이랄까. 고혹적이고 원숙한 자태의 보아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해맑게 희망과 꿈을 노래하던 상큼 발랄한 보아에게 더욱 정감이 가는 것은 한때 제이팝을 좋아하던 필자의 다분한 취향 탓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본에서의 보아는 필자가 말하고픈 '소싯적의 느낌'을 아직까지 고루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잠깐, 비단 보아뿐만이 아니라 제이팝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특징을 꼽으라면 멜로디가 부각되는 편곡과 추상적인 가사를 들 수 있다. 리듬이나 비트가 상대적으로 많이 부각되는 글로벌 트렌드와는 달리, 제이팝은 여전히 지금도 멜로디에 대한 예민하고 산뜻한 감각을 우선시한다. 그 멜로디를 읊조리는 가사 또한 일상적인 표현보다는 형이상학적인 표현을 선호해서, 매 노래의 가사를 찾아볼 때마다 수능 언어영역을 푸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팝송을 들을 때 가사를 일일이 해석해보고 이해하면서 듣지 않듯, 결국 라이트 리스너의 입장에서 제이팝을 들을 때 우선시되는 것은 멜로디인 셈이다.
보아의 일본 활동은 보아의 셀프 프로듀싱을 부각하였던 일본 정규 7집 앨범 'IDENTITY'(2010)을 제외하면 각 앨범마다 밝은 성향의 팝/댄스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사실상 일본 정규 6집 앨범 'FACE'(2008)까지 이렇다 할 커다란 변혁 없이 팝을 기조로 한 솔로 여자 댄스가수의 이미지를 유지해 온 보아는 인지도적인 측면에서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었지만, 일본 내 코어 팬층은 조금씩 옅어져 가고 있던 상태였다. 결국 기존 음악적 색깔에서 빈티지한 느낌을 가미하여 과감한 변혁을 시도한 IDENTITY 앨범은 보아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정규 앨범으로서 처음으로 오리콘 차트 위클리 1위에 실패하는 등 일본 대중의 고른 동의를 구하는 데는 실패했다. (결국 최근 일본 8집 정규 앨범 'Who's Back?'(2014)에서 어느 정도 과거의 모습으로 회귀하긴 했지만.) 일본에서의 전성기를 사실상 마무리한 보아는 2010년을 기점으로 자국 활동에 더욱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다행히 일본에서의 활동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일본에서의 지나간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음악으로 보답하겠노라 일본 팬들에게 약속함으로써 한 때의 '우타히메(歌姬(가희)의 일본어 발음)'가 아닌 팬들의 영원한 가수로 자리매김할 것을 다짐한 바 있다.
필자가 보아의 밝은 성향을 대변하는 그녀의 제이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기까지 도입부가 참 길었다. 반성한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변명을 달자면 사실, 이 리뷰는 다음과 같은 발칙한 궁금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많은 세월이 흘러 보아가 일본에서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서) 소소하게 활동하며 팬들과 만날 때,
팬들과 함께 무난하게 부를 수 있는 곡이 어떤 곡이 있을까?
그리고 필자가 멋대로 만들어 낸 이 발칙한 질문에 대한 멋대로의 답은 바로 'コノヨノシルシ (이 세상의 증표)'이다. 미디엄 팝 스타일의 본 곡은 음역대의 폭이 적당히 분포되어 있어 일반 대중들이 따라 부르기 쉬운 편이다. 그리고 비교적 커리어 초기에 발표된 곡이지만, 마냥 아이돌스럽게 원색적으로 밝은 것이 아니라 조개 속 진주의 영롱한 빛깔처럼 촉촉하고 은은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이를 덜 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수많은 히트곡을 제쳐두고 굳이 이 곡이어야만 하느냐고 묻는다면, 아까는 슬며시 미뤄두었던 가사 이야기를 꺼내도록 하겠다.
눈 앞에서 이상하게도 미소 짓는 당신과 나는
지도도 없는데 우연히 만났어
다른 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다른 날들을 보내온 우리들
그렇지만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는
기적 같은 꿈을 지금은 보고 있어
인연과의 우연한 만남을 지도와 증표로 빗대어 표현하는 이 노래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열심히 활동해왔던 보아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이 정도면 보아가 오랜 우정과 사랑을 나눠온 팬들과 함께 부를 수 있는 곡으로 더없이 적합하지 않을까. 앞으로도 보아가 한국과 일본에서 멋진 활동을 펼쳐 보이기를 기대하며, 이만 글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