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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돈 Nov 26. 2017

나는 억울합니다

대한민국 공교육을 책임지는 영어교사로서

얼마 전, 유튜브에서 영어교육 관련 자료를 웹 서핑하다가 한국인이 빈번하게 사용하는 표현들을 영어로 번역해주는 동영상이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열어보지는 않았지만, 썸네일에 있었던 일부 예시 표현들 중 '억울하다'에 눈길이 갔다. 아무리 한(恨)의 정서에 특화된 한국인이라지만 그 정도로 억울함이 한국인이 빈번하게 사용하게 되는 표현일까.


며칠이 지나 다시금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나는 내친김에 '억울하다'을 네이버 영어사전에 검색해 보았는데, 결과적으로 '억울하다'에 1:1로 대응되는 영어 표현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전에는 1차적으로 'feel tight'가 추천 표현으로 나왔지만, 이는 감정 묘사에만 충실할 뿐 화자가 억울한 감정을 느끼는 원인이나 정황을 암시하고 있지 않았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feel victimized', 'suffer unfairness'가 있었지만 이는 전자와는 반대로 화자가 처한 부당한 정황을 묘사할 뿐, 이로 인해 화자가 느낄법한 감정적 측면에 대한 묘사를 담고 있지 않았다.


혹여 '한국어의 우수성'에 대해 논하려는 글이려니 생각하셨다면, 그건 아니다. 다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책임지는 영어교사로서 이 사소한 생각의 계기가 공교롭게도 나를 '억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는 영어 학습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1인 미디어 콘텐츠들이 풍부하다. 이는 영어 학습자에게 분명 고무적인 일이고 나 역시 학생들에게 해당 콘텐츠들을 학습해 볼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바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영상 제작자 대부분은 영어 공교육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하다. 대부분의 동영상은 '학교에서 잘못 배운 영어',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는 영어' 따위의 제목을 달고서 '우리는 학교와는 질적으로 다른 고급 정보를 담고 있으니 동영상을 얼른 열어보아라'는 식으로 사용자들을 자극한다. 사용자 유입을 위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문제는 이러한 동영상이 은연중에 학교 영어교육을 불신하도록 부추기는 요소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영어교사가 아니기에 덮어놓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은 부러우나, 나는 영어교사로서 그러한 표현들이야말로 단지 광고효과만을 위해 자신들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를 기만해 버리는 행위라고 지적하고 싶다.


영어를 비롯한 모든 언어 교과는 경향의 학문이다. 언어의 규칙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약속하여 두루 쓰는 경향성을 바탕으로 하지만, 이는 언어를 학문으로 규정하기에는 타 학문에 비해 그 기반이 견고하지 못하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언어는 학문이기 이전에 인간의 의사소통 그 자체이므로 개인의 다양한 특질을 반영하게 되고, 그로 인한 예외와 변수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기준점을 제시해야 하는 학교 공교육은 언어의 어떤 부분을 가르칠 수 있을까? 쉽게 변하지 않고 안정적인 요소들을 위주로 가르치는 보수적인 입장을 띄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학교 영어는 아직 시간의 흐름에 의해 검증받지 못한 최신 경향을 다루기보다는 다소 고전적이고 확실하게 설명 가능한 요소들을 위주로 한 보수적 성향을 띌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직 완전히 굳어지지 않아 견해에 따라 논쟁이 될 수 있는 요소를 공교육 시험에서 다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교육이 평가의 기능에서 면제되지 않는 한, 애석하게도 언어교육의 딜레마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동영상들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학교 영어교과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고 학교에서 배운 내용에 첨언하거나 각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인들 또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 학교에서 배운 내용에 신세를 지는 형국이라면, 학교에서 어떤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해서 '생략'이란 표현 대신 '잘못'이라는 표현으로 선동하는 것은 결례가 아닐는지.


물론 학교 영어교육이 좀 더 세련되게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나 게으름으로 인해 단순히 보수성을 넘어 도태된 부분은 분명히 존재하고, 나도 이러한 점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타개하고자 대안적인 교수내용을 물색하려는 노력은 '평가'라는 까다로운 항목에 다시금 발목이 묶인다. 더불어 영어 교과교사 외에도 학교 현장에서 교사로서 요구되는 덕목은 얼마나 많은지. 일선의 교육학자들이 나와 같은 일개 교사들이 고민 않고 가르침 그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었으면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잖은가. 공교육이 지닌 보수성이나 제도 자체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언어에 대한 열린 마음을 심어주는 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거기서부터 학생들이 학교에서 미처 다뤄주지 못한 부분들을 어떻게든 스스로 탐구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 나는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든 발버둥 치며 더 나은 영어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최선을 다하기 위한 동기로서 앞으로도 열심히 억울해 볼 작정이다. 


여전히 학교 영어교사라는 이유로 잘못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아니, 나는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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