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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돈 Feb 09. 2018

바닷가에서 / 그대는 사금 같다

1.

속이 텅 빈 바닷가

나는 오늘까지 저만치 비껴 서서

신경을 청각에 곤두세운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화가 나


갈 곳 없는 감정들이

자기가 잘났다며 목청을 돋우다

피로에 젖은 백색소음으로 분절되어

어두운 수평선으로 차게 고꾸라진다


그래

원망의 파도를 베고 누운 자에게

너는 심심한 자장가라도 들려주려므나


눈물과 파도를 분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될 때


그제야 나는 조심스레

바지춤에 묻은 소금을 털고 일어나

새 노랠 쓸 준비를 한다



2.

이 곳이 바다라면

그대는 사금(砂金)일 거다


내 맘 속 흩뿌려져

찬찬히 맥동하거니와


해사하게 웃는 얼굴은

소싯적 주머니 속 유리구슬 되어

땍때굴 땍때굴 소릴 내니 말이다


때론 모래 알갱이 뒤로 숨어

조금 많이 찾아내기 어렵지만

슬픔에 젖어있을 때야말로

간혹 들리는 땍때굴 땍때굴


그 소리에 내 마음

은은하게 빛이 나는 걸 보면


어렸을 적 불 켜진

가로등 아래 서서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가수가 낸 신곡을

막 처음 듣던 그 설렘만큼


눈을 가늘게 뜨면

산란하며 사금처럼 잘게 쪼개지는

가로등 불빛에 담아 둔 추억만큼


그댄 그때 함께한 적 없지만

함께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대가 모르는 곳에서

나는 지금 노래하고 있네'

그때 그 노래는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나는 이 바닷가에 서서

마음으로 그린 기타를 품에 안고


'그대가 모르는 곳에서

우리 함께 노래하고 싶네'라며

나직이 새 노래를 써내려 나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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