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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돈 Jul 18. 2018

Dear Reli

한참 오래 전의 나에게

나이가 들면

글이 좀 더 쉽게 써질 거라 생각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좀 더 나였을 때

질리도록 많이 써둘 걸


레리, 뭐라도 되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하던 때가 기억나니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긴 척

생각 없이 대충 열심히 살았더니

그 결과 이러고 살아


꿈을 찾으라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말하지만

정작 나는 기댈 곳이 없어, 허무해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며

변하지 않을 거라 했지만


하찮은 영어 몇 마디론

세상을 바꾸지 못했고

결국 바뀐 건 나인 것 같아,


미안해


이렇게 볼품없게 살려던 건 아니었는데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모르겠어


레리, 가난하다는 것은 솔직히

불편한 것만이 전부는 아녔잖아


지금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풍경을 바라보더라도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이들과 꼭 같을까,

아이들은 그걸 감사하다는 걸 알까


가끔 멍해지다 보면

여전히 내가 누릴 권리는 없는 것 같아

불쾌한 천민의 마음이 들어


그러니까 레리, 그냥 살아

그때의 나라면 어떻게 해도

지금의 내가 되었을 거야


미안하단 말도

감사하단 말도 전부 고마워


그러니까 레리, 그냥 죽지만 말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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