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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돈 Jan 11. 2019

2018년의 어떤 시간들

3학년 3반 졸업에 부쳐

1.

뭐랄까

무너질 것 같던 시간이 있었어


너희가 내 삶을 움직이는

전부나 다름없던 그때


시작은 나의 잘못이었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다 느껴졌을 때


단상 위에 선 내 모습이 떳떳했는가

스스로 상상하기 어려웠을 때


그래서 그랬어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있었어


2.

하지만 막상

그 날이 되었을 때


예정에 없던 눈물이

곳곳에서 아룽거릴 때


내가 지닌 아픔은 그저

양초의 끄트머리서 울먹이다


손등에 툭 고개를 떨구는

촛농과도 같단 걸 느꼈어


마주친 순간 따끔하니

어쩌면 싶나 쩔쩔맸지만


머잖아 나 역시

눅눅하게 아룽질 것을


3.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거였어


쉰다는 건 역설적으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다시는 없을 순간이야

너희에게나 나에게나


다만 그걸 깨닫는 건

왜 하필 너희들의 때여야만 했을까


내 인생에서 가장

교사임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


나의 결함적 집착이

교사로서 실격이라고 느꼈을 때


그것이 도리어 역설적으로

더욱 지켜나가고 싶다는 걸


원해서 교사를 한 적 없다며

불만 투성이었던 내게


처음으로 비겁함을 털어내게 하신

신의 섭리라는 걸


4.

나는 여전히 불완전해서

마음을 나누지 않으면 불안해


그래서 일부러 생각해

관계란 건 항상 드라마틱하진 않아,


다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진짜로 없는 건 아니란 것을


그렇게 너희들을 통해

조금은 깨닫게 되었어


떠나고 나서 보니

너희들이 내게 가르쳐 주었어


5.

나는 존재를 숨기기로 했고

그렇게 졸업이 왔어


혼자 드라마의 한 장면을 찍으며

순탄하게 잘 넘어갔어


하지만 크랭크 업 사인을 내리고

돌아와 홀로 침대에 누웠을 때


나를 과거로 되감는 건

본격적으로 허전한 시간들


한참을 서성이며

공허함과 함께 춤추는 적막들


6.

미안해

난 슬퍼도 눈물이 잘 나오질 않아


울어 줬던 너희들을 위해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니 원


다만 마지막 나눈 인사처럼

우리 그렇게 잘 살도록 하자


앞으로도 우리네 인생에서

수없이 반복될 만남과 이별에서도


그렇게

멈춰 서야만 했던 시간들


깨달아야만 했던 시간들

허전해야만 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서로를

추억할 수 있게끔 도와줄 테니


사랑한다면

그걸로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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