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3반 졸업에 부쳐
1.
뭐랄까
무너질 것 같던 시간이 있었어
너희가 내 삶을 움직이는
전부나 다름없던 그때
시작은 나의 잘못이었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다 느껴졌을 때
단상 위에 선 내 모습이 떳떳했는가
스스로 상상하기 어려웠을 때
그래서 그랬어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있었어
2.
하지만 막상
그 날이 되었을 때
예정에 없던 눈물이
곳곳에서 아룽거릴 때
내가 지닌 아픔은 그저
양초의 끄트머리서 울먹이다
손등에 툭 고개를 떨구는
촛농과도 같단 걸 느꼈어
마주친 순간 따끔하니
어쩌면 싶나 쩔쩔맸지만
머잖아 나 역시
눅눅하게 아룽질 것을
3.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거였어
쉰다는 건 역설적으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다시는 없을 순간이야
너희에게나 나에게나
다만 그걸 깨닫는 건
왜 하필 너희들의 때여야만 했을까
내 인생에서 가장
교사임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
나의 결함적 집착이
교사로서 실격이라고 느꼈을 때
그것이 도리어 역설적으로
더욱 지켜나가고 싶다는 걸
원해서 교사를 한 적 없다며
불만 투성이었던 내게
처음으로 비겁함을 털어내게 하신
신의 섭리라는 걸
4.
나는 여전히 불완전해서
마음을 나누지 않으면 불안해
그래서 일부러 생각해
관계란 건 항상 드라마틱하진 않아,
다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진짜로 없는 건 아니란 것을
그렇게 너희들을 통해
조금은 깨닫게 되었어
떠나고 나서 보니
너희들이 내게 가르쳐 주었어
5.
나는 존재를 숨기기로 했고
그렇게 졸업이 왔어
혼자 드라마의 한 장면을 찍으며
순탄하게 잘 넘어갔어
하지만 크랭크 업 사인을 내리고
돌아와 홀로 침대에 누웠을 때
나를 과거로 되감는 건
본격적으로 허전한 시간들
한참을 서성이며
공허함과 함께 춤추는 적막들
6.
미안해
난 슬퍼도 눈물이 잘 나오질 않아
울어 줬던 너희들을 위해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니 원
다만 마지막 나눈 인사처럼
우리 그렇게 잘 살도록 하자
앞으로도 우리네 인생에서
수없이 반복될 만남과 이별에서도
그렇게
멈춰 서야만 했던 시간들
깨달아야만 했던 시간들
허전해야만 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서로를
추억할 수 있게끔 도와줄 테니
사랑한다면
그걸로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