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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돈 Mar 16. 2019

두 자릿수는 되어야 뭔가 좀 보이지 않을까

8년 차에 접어들며

또 기대한다.

그냥 왠지 이번에는 내 경력의 정점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은 설렘.


하지만 이내 맘을 다잡는다.

바보야, 늘 이땐 그랬다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의미 없음이란

그 일 자체가 무가치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삶의 우선순위가 아니게 되었을 때

이런 고민이 떠오르지조차 않게 된 것이라는 걸.


그렇게 애를 쓰고 전전긍긍하고.

눈물을 흘리고 감정에 호소도 해 보고.

피곤하게 지내 온 지난 시절들,

정상적인 해는 단 한 번도 없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때때

특별한 인연들을 얻기도 했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그런 질문이 비교적 최근에 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

바람직한 직업상을 추구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혹은 어린 시절 사랑을 못 받고 자라

애써 완벽한 사랑을 베풀고

받아야 하는 강박이 있는 건지도.


나는 그다지 교사로서 좋은 사람인지 모르겠다.


교사로서 학생에게 자존감의 본이 되어야 하지만

나의 자존감은 마치 주입식으로 암기한 지식같이 느껴진다.

나는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라 기계적으로 되뇌지만

학생들로부터 사랑받는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아팠던 작년을 기점으로 많이 움츠러들었다.

많은 것들을 시도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결코 교사로서 내가 목격한

다른 누군가의 정점에는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직감한다.


그것은 인생 전반에 걸친 단순한 운일 수도 있고

정말 내가 교사로서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내가 타인의 업적을 과대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노력을 통해

운이라는 바늘멍에 노력이라는 단추를

끼워 맞추기 위해 평생 안간힘을 쓰는 것.


그리고 그 마저도 하나님이 내리신

감사해야만 하는 시련의 굴레라고 열심히 되뇌는 것.


올해는 힘을 빼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내겐 왠지 노력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노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더 힘들 때가 있다.


마음이 혹시나 흘러나갈까

꽁꽁 싸맨 채 가만히 있다 보면


그렇게 욱신욱신 괴롭고

미친 듯이 바쁜 3월에

이렇게 짬을 내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올해로 8년 차

갓 신규일 때는 8년 차들이

그렇게 우러러 보일 수가 없었다.


지금은 적어도 10년,

두 자릿수는 되어야 뭔가 좀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물론 안 보일 거라는 걸 알지만,

그렇게 미루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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