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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돈 Aug 17. 2019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찍는 상상

시간과 능력은 없고 욕심만 많다

나는 대한민국 중등교사로 일하는 30대 남성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글을 썼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글을 잘 쓴다는 소리를 제법 들었다. 덕분에 글쓰기는 내가 유일하게 '객관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특기였고, 내성적이었던 나를 타인 앞에 자신 있게 드러내 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낯부끄러운 자신감이지만, 내 주변의 또래 중에서 나만큼 열성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착각이었다. 정식으로 작문을 배운 것도 아니었고 독서를 많이 하는 것은 더욱이 아니었지만, 글쓰기는 그저 힘들고 억울한 게 많아 우울했던 소싯적 나의 감정을 잘 다스려주었다. 나의 창작욕은 가진 것이 시간뿐이었고 딱히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던 20대 초중반에 이르러 정점에 다다랐고 그때는 글을 쓰는 것이 숨 쉬는 행위만큼이나 자연스러웠다.


교사가 되면서 널널했던 나의 시간은 글을 쓰는 행위에서 일을 잘해나가기 위한 수업 준비와 학급관리로 대체되었다. 영어라는 전공과목에 늘 자신이 없었고 준비가 철저하게 되어있지 않으면 불안한 나의 완벽주의 기질은 주말과 방학기간에도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수업 준비에 나를 매달리게 만들었다. 원체 관심 없었던 연애는 직장의 특수성이란 나의 변명으로 인해 영영 불가능한 영역이 되었고, 결국 그 좋아하던 글쓰기도 뒷전으로 밀려나야 했다.


평소 취미로서 쓰던 수필류의 글 대신에 교사로서 내가 기계처럼 찍어내야 했던 글들은 공문서와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가장한 대신소개서), 그리고 학생들의 생활기록부였다. 나름 글 쓰던 사람이랍시고 나는 모든 과정에 공을 들였다. 나의 전 세대가 무슨 생각으로 썼는지 도통 알 길이 없는, 호응이 맞지 않는 사무적인 조잡한 문장들을 하나하나 쉬운 말로 풀어 다시 썼고, 천편일률적인 자기소개서가 되지 않기 위해 참신한 표현을 이끌어 내고자 맡은 학생들을 요리조리 닦달했다. 내가 맡은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는 엔간하면 항상 꽉꽉 채워 써 주었고, 그것이 교사로서 학생들을 사랑하는 나의 자부심이었다.


나에게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튀어 보이다 보면 누군가의 눈에 들 것이고, 언젠가는 이 바닥에서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야심이 있다. 그건 갓 교사가 되었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또 다른 마음 한편에서 관료주의와 규격화된 사고방식에 스멀스멀 물들어가는, 세상에 적당히 타협하고 싶은 나의 비겁함이다. 아마도 소싯적 내가 어른에게서 기대했던 '성숙'같은 단어로 묘사할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먼, 내가 혐오하는 그런 부류의 어른이 되어가는 거겠지.


정제된 글을 길게 쓴다고, 학생들마다 차별화를 해 준다고 내가 돈을 더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소수의 학생들이 나의 진심을 알아주고 고마워하지만 분명 효율로 따진다면 나의 노력은 부질없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한다고 해서 함께 가르치고 협력해야 하는 처지에서 나의 열심은 때로는 다른 선생님들께 피해가 되기도 한다. 정공법으로 승진하여 나의 교육관을 퍼트리고 선한 영향력으로 미디어에 노출되고 싶지만 결국 오프 더 레코드에서 내가 주워듣는 것은 라인 타기로 요약되는 어른의 사정 같은 것들이다. 교직이라고 해서 딱히 사회생활이랑 본질적으로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제 나는 글을 쓰는 것이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교사가 된 이후로 일한 시간만큼 충분히 쉬어 주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다 보니 글쓰기를 비롯한 자기 계발에 한없이 소홀해졌다. 주기적으로 글감이 떠오르고 정제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지만, 막상 컴퓨터 앞에 앉아서 어떻게 글을 써 내려가면 좋을지 생각하노라면 굳어버린 암전 상태의 두뇌에 좌절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솜씨는 없고 써야 한다는 의지만이 남은 지금, 나는 더 이상 글을 잘 쓴다고 스스로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유튜브로 요약되는 미디어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나도 영상 제작기술을 배워 유튜버나 되어볼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든다. 초등교사와 비교하여 콘텐츠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등교사 분야에 보탬이 되고 싶기도 하고, 글발이 달리니까 영상을 매개체로 하여 글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어물쩡 때우려는 심산이다. 하지만 지금의 생활 패턴으로는 기술을 배우는 것은 어림도 없을뿐더러 나 같은 유리 멘탈이 그 무시무시한 악플들을 견뎌 낼 리 없다. 무엇보다 객관적으로 공무직인 교사는 유튜브에서 할 수 있는 콘텐츠가 제한되어 있다. 나도 '염따'처럼 'flex'하고 싶고 '소련 여자'처럼 '국뽕 코인'에 탑승해 보고 싶다 한들, 교사로서 그런 콘텐츠는 금지사항이다. (그렇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염따와 소련 여자를 통해 알아본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젊은 세대의 심리' 그리고 '교사와 평범한 30대 남자 사이에서 우리 아이들이 이러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모습에 대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한 복잡한 심리 어쩌고 저쩌고'에 대해 쓰려고 했으나 짧은 지식과 후드러지게 욕먹을 것이 두려워 포기하고 대신 쓰는 글이다.)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말이지, 누가 내 다큐멘터리를 찍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상 제작기술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글 쓰느라 골머리를 앓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다 그럴듯한 서사를 만들어 내어 죄다 편집해줄 테니까. 내가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교사로서 학생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지, 그 와중에도 어떻게 스스로가 차별화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고 어떻게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 그렇게 알려주고 싶다. 설령 그것이 포장이 잘 된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된다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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