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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돈 Oct 27. 2019

교감 선생님,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해요

처음으로 경위서를 썼던 그 날 말입니다.

공교사는 1년에 2번 수업을 학부모에게 공개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어떤 선생님들은 학부모에게 수업을 공개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지만, 수업 운영에 관해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나는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아 본 일이 없다. 프레젠테이션 파일은 평소에도 꼼꼼하게 만들고 있어 공개수업을 위한 파일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고, 아이들을 위해 모둠활동을 정기적으로 하고는 있지만 활동을 집어넣기 어려운 시수를 공개해야 할 때는 구태여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꾸며낸 인위적인 수업이 아닌 평소 하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공개수업이라 생각하는 나는 교사 초임이었던 첫 해를 제외하고는 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 했다.


그런 나의 공개수업에 딱 한 번 태클이 들어온 일이 있었는데, 내가 교사 2년 차일 때의 일이었다. 나의 교직관을 송두리째 뒤흔들 정도의 파급력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화가 나고 마음속이 복잡해진다. 당시 공개 수업일인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던 나는 평소대로의 차림으로 출근을 했는데, 많은 선생님들이 정장 차림으로 출근을 하신 것을 알아차렸다. '아, 맞다. 오늘이 공개 수업일이었지.' 조금 찔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복장을 문제 삼을 정도로 후줄근하게 입고 온 것도 아니니 별 일 없을 거라 여기며 책상에 앉았다.


시골의 한 작은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나는 시간표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보통 공개수업의 날 계획이 결재가 나면 공개 수업일의 고정된 시간표를 추후에 바꿀 수가 없는데, 문제는 초짜인 내게 그런 조언을 해줄 선배가 없었다. 교사 첫 해 때는 이를 몰랐어도 무사히 넘어갔으나 그 당시에는 공개수업 전후로 선생님들의 출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공개 수업일에 대한 유의사항을 숙지하지 못했던 나는 이미 고정이 되어버린 공개 수업과 다른 수업을 사전에 교체했었다. 결국 문제가 생겼다. 과학선생님께서 사전에 없었던 공개수업을 2교시에 갑작스레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과학선생님은 실수할 수 있다며 괜찮다고 하셨지만,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 상황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분이 계실 줄은 몰랐다.


3교시는 내 담임반의 공개수업이었다. 교실에 들어갔더니 아이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쉬는 시간에 또 한 바탕한 듯한 낌새였다. 기가 센 여학생들과 무기력한 남학생으로 구성되어 있던 소규모 학급의 담임이었던 나는 당시 제대로 담임 신고식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도저히 수업을 진행할 수 없겠다고 판단한 나는 준비했던 수업을 내려놓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아이들의 입장을 하나하나 들어주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지 조금 지나자, 교실 뒷문이 열리며 학부모님 몇 분과 교감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아이들의 감정은 이미 격정에 치닫는 중이었고, 나는 다급하게 교감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교감 선생님, 지금 아이들이 싸우고 있어서 상담 중입니다. 죄송하지만 지금 공개수업을 하기에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그 말을 듣고는 약간 입을 삐쭉거리시더니 학부모님과 함께 교실을 나가셨다. 교감선생님의 표정이 신경 쓰였지만, 교실의 상황이 훨씬 중요했기에 나는 더는 생각 않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다행히 아이들의 다툼을 중재한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교무실로 내려왔다. 업무를 재개하려는데 갑자기 교감선생님이 나를 부른다.


"안상현 선생님, 잠깐 일로 와서 앉아 보세요."

(다가가서) "교감 선생님, 무슨 일이십니까?"

"안상현 선생님보다 교직 경력이 훨씬 많은 선생님들도 공개수업의 중요성을 알고 옷차림을 갖춰 오셨는데,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네요."

"제가 오늘이 공개 수업일인지 잊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제대로 복장을 갖추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아까 공개수업을 거부하셨죠?"

"네? 저는 공개수업을 거부한 것이 아니에요. 아이들이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에는 수업이 불가능했고, 수업보다 상황을 진정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지금 선생님이 하시는 행위는 교감인 저에게 도전하는 행위 아닌가요. 학부모에게 학교를 공개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저를 망신 준 것이나 다름없는 겁니다."

"(어이가 없었지만 따질 수 없어 침묵)......"

"그리고 수업은 왜 멋대로 바꾼 겁니까? 공교육에 불만을 갖고 도전하시는 겁니까?"

"그건... 제가 공개 수업일에 정해진 시간표를 바꾸면 안 된다는 것을 숙지하지 못했습니다. 작년에는 이런 경우가 없어서 제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일단은 경위서를 쓰세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받아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 네."


교감선생님의 어투는 차분했고 이렇다 할 저속한 표현은 없었지만, 나는 본인의 체면치레에만 치중하는 교감선생님이 옹졸하다고 느꼈다. 공개 수업일을 잊어버리고 시간표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은 나의 잘못임이 분명하지만, 학교의 리더로서 초짜 교사가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은 너그러이 품어줄 수는 없었던 걸까.


나는 경위서를 쓰면서 옆자리의 국어 선생님을 힐끔 쳐다봤다. 교감 선생님과 불과 3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가까운 자리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국어 선생님은 나의 상황에 반응하지 않으셨다. 얼얼한 고독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나는 내가 객관적으로 잘못한 부분만을 적어 낸 사유의 일부분을 제출했다.


추후 다른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은 바로는 교감 선생님은 나를 실제로 징계 주려고 관련 교육법규까지 찾아보셨다고 한다. 다행히 나의 사정을 이해하신 몇몇 부장 선생님들의 간곡한 만류로 교장선생님의 시도는 무산되었지만, 나는 두고두고 나의 행위가 징계를 받을 정도로 질이 나쁜 것이었는지 곱씹어야 했다.


이듬해, 교감 선생님과 같은 교과인 신규교사가 학교에 들어왔다. 교감 선생님은 그 신규교사에게 기대하는 바가 많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신규교사는 학교에 불만이 많았고, 주어진 업무를 태만히 했다. 직속 부장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기를 수차례. 결국 부장 선생님은 화가 나서 신규교사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셨지만, 교감 선생님은 이를 거부하셨다. 역시 전해 들은 바로는 신규교사의 잘못이 더 크다고는 생각하지만, 그의 잘못은 학교 내부에서 일어난 문제고, 나의 경우에는 '학부모에게 대외적으로 노출된' 문제였기 때문에 징계를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고 억울했던 나는 이후 장을 보다가 당시 학교로 오신 학부모님과 우연히 마주친 일이 있었고, 그때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아유, 이런 일도 있는 거고 저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건데. 부모로서 다 이해해요."


교감 선생님, 6년이 지났지만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해요. 저는 교감 선생님과 달리 요식행위를 싫어하는 실용주의자라 여전히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살고 있어요. 물론 그때 저질렀던 업무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더는 실수하지 않는답니다그럼에도 여전히, 공개수업 시즌이 때마다 마음 구석이 욱신욱신 아파오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사과 받을 일은 없겠지요.


결론. 나는 이렇게 당했지만, 적어도 내가 당했던 억울한 경험을 아이들에게 가하지는 말자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는 분노하고 징계하기에 앞서 아이의 입장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품어주고자 노력하자. 역시 나는 관리자에게 좋은 교사이기 전에 아이들에게 좋은 교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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