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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돈 Jul 10. 2017

닿지 않는 눈빛을 쬐며
혼자 걷는 이 길이

1.

나는 오늘도 교실을 헤맨다


내겐 퍽이나 시답잖은 교사라는 직함은

석상 틈새를 구석구석 비집으며

노상 분노하는 게 일이다


모아이 석상을 바라보는

숭고함 따윈 없으나

두려운 건 똑같아


좀처럼 눈을 맞출 수 없다


그래도 열심인 나라며

허공을 조준한 채

사랑한다고,


나직이 토해냈지만


나조차 분간이 안 되는 맘을 들킨 양

휘휘거리는 정적만이

눈가를 아리게 한다


2.

어쩌다 힘이 날 땐

차디찬 석상에도 꽃은 피고

격려의 환청을 들은 것 같다면


설령 조현병이라도 좋다


선배에겐 덧없는 마음일지라도

타의로 내던져진 이 숲을

오늘도 용감하게 헤매고픈 건


그 덧없는 순간을 기다리는

순례길 위의 도로시가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3.

허나 순례의 길은 고난의 길,


닿지 않는 눈빛을 쬐며

혼자 걷는 이 길이

너무 눈부시다 못해 어두웁다


지식으론 이해했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불가사의한 너의 빛은


불가시광선의 영역을 침범하여

가볍게 피부를 뚫고

나의 폐부를 겨냥하는구나


닿지 않기에 더욱 절절하구나


4.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이스터 섬에 불시착하여

지금의 기억은 사위겠다만


닿지 않는 눈빛을 쬐며

혼자 걷는 이 길이

조금은 외롭지 않게끔


너와 나 서로가

지그시 바라볼 수 있기를


서로 다른 주파수의 간섭 속에도

너와 나 자라날 수 있기를


그게 교사의 마음인 양

멋있는 척

끝을 맺어본다


눈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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