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무섭다.
엄마가 전해준 이야기로는 신생아 때 중이염에 걸린 이후로 물을 두려워했고, 4살 때 워터파크에 가서 아빠가 물에 빠뜨린 이후 본격적으로 물만 보면 진저리를 쳤다고 한다. 기억나는 순간은 초등학교 1학년 즈음부터이다. 주민센터 수영장에 친구와 놀러 갔다. 들어가자마 빠져 혼자 허우적대다가 누군가 살려준 기억이 난다. TV속 한 장면처럼 온 손과 발을 허우적대며 열손가락만 수면 위로 드러났고, 손을 제외한 모든 몸뚱이는 수면에 잠겨 물살에 휘감겨는 '듯' 했다. 잠식당해 죽을 것만 '같았다'. 그 이후로 물이 점점 더 무서워지기만 했다. 숨이 안 쉬어지고, 발이 닿지 않고, 물이라는 압력에 짓눌리는 그 기분만 남아 물 앞에서는 얼음이었다. 그 이후로 몇 번 바다. 수영장, 물놀이 도전해 보았지만 단 한 번도 발이 닿지 않는 깊이 이상으로 가지 못했다.
사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주로 땅 위를 걷고, 바다는 보기만 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수영장에 놀러 가지 않고, 바다에 가도 파라솔에 앉아있으면 됐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하필이면, 내가 닮고 싶은 사람, 내 마음에 들이찬 사람이 물을 좋아하는 것이다. 바다를 보면 위로를 받는단다. 망할.
네가 좋아하는 바다를 함께 보러 가는 기억을 쌓았다. 너와 함께하지 않는 시간에 혼자 바다를 찾게 되는 순간마저 찾아왔다. 그럼에도 물과 내가 만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 너는 네가 본 물속의 세상, 물이 주는 기쁨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어 했다. 물장구가 쳐서 얼굴에 물만 튀어도 숨이 안 쉬어지는데 기쁨이 느껴지는 일은 아주 아득한 이야기였다.
새벽수영에 등록했다. 물속에서는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숨도 안 쉬어지고, 음-파 호흡만 하다 끝났다. 강사님은 도저히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뿐이었다. 수영장은 운동이 아니라 수행이었다. 온몸에 힘이 빠지지 않아 몸이 뜨지 않았다. 그렇게 1개월도 안 되는 수영 배우기는 끝났다.
또 너와 함께 바다를 몇 번을 보러 갔을까? 어느 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바다에 가게 되었다.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그들과 멀찍이 떨어져 있으려 했다. 발이 닿는 바다였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얼음이었다. 그때, 스승이 태아는(우리는) 양수에서 자라기 때문에 물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준다고 했다. 그 두려움은 빠지면 된다고 스승은 뒤로 넘어 빠뜨렸다. 3번만 빠지자고. 스승이었기에 몸을 맡기고 빠져볼 수 있었다. 스승은 나의 두려움과 불안함에 전염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 빠져보는 거지 뭐' 하는 그가 주는 안정감에 전염되었다. 그 한 번의 기억으로 물이 편하고, 네가 느끼고 보는 물의 세상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네가 보여주고 싶은 그 물속이 더 궁금해졌고, 때가 되면 언젠간 너와 함께 바다에서 수영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