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체를 훼손하는 이유

by 이사원

그건 첫 이별이었다. 연애 경험은 그 전에도 있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흔히들 말하는 ‘사랑’이란 걸 하고 나서 겪은 이별은 처음이었다. 나의 첫 이별은 어찌 보면 사소한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약속에 꼭 10분 정도씩 늦고는 하는 나의 작은 습관에서 말이다. 나는 내 연인이 싫다고 말한 이 습관을 고치려고 1년을 노력했지만 결국 늦고 말았고, 약속 장소로 가는 그 초조한 택시 안에서 그는 여느 때처럼 언제 오냐고 재촉하며 강압적인 메시지로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사귀는 5년 내내 서로 각자의 바람대로 변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나는 늦는 사람이고 그는 다혈질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은 쉽게 변할 수 없는 개인의 본성이라는 진리만 깨닫게 되었다.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그 끝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려졌다. 과연 내가 평생 다툼이 생길 때마다 사나운 말투로 대화하는 사람을 견딜 수 있는가? 대답은 아니었다. 10월 어느 가을날, 나는 우습게도 이별을 고하는 날에도 약속 시간에 늦었고, 우리는 헤어졌다.

딱히 권태기가 온 것도 아니고 결코 무시할만한 두께의 추억을 쌓아온 것이 아니기에, 이별은 아팠다. 기억하기에, 그 가을은 유난히도 따뜻했는데, 나 홀로 추워했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온 몸이 시렸다. 이 추위를 토로할 대상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비참하게 했다. 이렇게 아픈 게 사랑인 줄 알았으면 시작도 하지 말 걸 후회하며 하루 종일 어두운 감정들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매일 친구와 약속을 잡았고, 술을 마시고, 각종 게임을 했다. 그러다 문득, 제모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경험한 가장 강력한 고통 중 하나이며 하고 나면 기분도 산뜻해지는 브라질리언 왁싱 말이다. 적어도 왁싱을 받는 도중에는 너무 아프니까 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겠지 생각하며 시술 날짜를 예약했다. 물론 왁싱을 받는 와중에는, 왜 내가 돈 주고 고문을 받고 있는 걸까 자책했다. 특히 아픈 부위가 있다. 가장 안쪽에 있는 여린 살일수록 아프다. 그래도 내 털들이 뜯겨 나가는 순간만큼은 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피어싱, 타투, 탈색 이런 것들은 사람들이 흔히들 일탈을 원할 때 행하는 신체 훼손 방법 중 하나이다. 나도 저 중에서 타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경험해봤는데 실제로 단기간에 주는 효과는 강렬하다. 과거를 떠올려보면, 나는 주로 외적인 변화를 주기 위해서도 있지만, 심경의 변화가 있을 때 저런 것들을 했다. 이를 테면, 혼자 미국에서 생활할 때, 너무 외로워서 근처 피어싱 샵에 가서 충동적으로 아웃컨츠를 뚫었다. 나는 주로 마음이 아프면, 몸을 더 아프게 해서 내 정신을 착란시키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자해를 하고 싶다거나 한 건 아니니, 주변 지인들을 절대 걱정시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건전하고 긍정적인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고 싶은 욕구가 든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쓰기 같은. 실제로 최근에는 108배, 계단 오르내리기, 반신욕 등 다른 다양한 방법들도 시도해보고 있다. 개중 제일 잘 맞는 건 108배인데, 요가처럼 명상과 신체 수련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좋다. 요가와 불교는 공통점이 많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사실, 아직도 그가 보고 싶긴 하다. 아니, 생각난다는 개념이 맞다. 문득문득 일상 속에서 그가 떠오른다. 다시 인연을 이어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나간 추억들을 모조리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동안 그로부터 한 번의 인스타그램 언팔로우가 있었고, 두 번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었다. 너도, 나도 부단히 홀로의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너도 나처럼 너만의 감정 배출구를 잘 찾고 있기를 바라.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엔 마음속으로 서로 토닥토닥해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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