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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름 Nov 09. 2020

2. 회사가 나에게 주는 것들

  최근 인수인계로 회사를 나가고 있는데, 아무래도 회사에서 주는 안정감은 무시하지 못한다. 휴직 상태라는 건 아직 공무원이라는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서든 “나 공무원이오”라고 해도 된다는 것이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직장이 주는 소속감과 안정감이 충족된다. 소속감과 안정감이 해소된다면 이제 1단계는 해결된 것이다. 그다음은 무엇으로 날 즐겁게 할지, 어떻게 더 안정적으로 이 자리에 앉아있을지 고민하면 된다. 물론 다음 달 월급으로 뭘 살지 쇼핑 목록에 담는 고민도 포함해서 말이다.  

    

  잠깐 다른 길로 새자면, 요즘은 모두가 소비에 긍정적인 가치를 둔다. 경제를 활성화하고, 개인에게 만족감을 주고 뭐 돈 쓰는 일이라면 사실 뭐가 됐든 즐겁지 않은가. 회사를 다니며 미래의 월급까지 내 지갑에 넣게 되니 씀씀이는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많아진다. 휴직을 했음에도 이 씀씀이는 쉽게 줄어들지 않아 여전히 일주일에 몇 가지씩 물건을 사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적어지는 잔고는 둘째치고 나의 행복을 우선하며 살고 있는 요즘은 그것마저 행복하다. 이것 역시 회사가 나에게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돌아와서 회사가 주는 안정감과 소속감을 이기고 (퇴사를 위한) 휴직을 택하게 된 것에는 나의 우울증이 한몫했다. 결정적으로 내게 6개월짜리 진단서를 안겨주었으며, 생과 죽음을 고민하게 된 대신 재직과 휴직만을 고민하게 해 준 소중한 나의 우울증. ‘굿바이 블랙독’이라는 책을 보면 우울증이 얼마나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지를 알게 된다. 한동안 괜찮을 때는 그랬다. ‘그래, 덕분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게 됐잖아. 고맙다 우울증’. 그러다 힘들어지면 ‘개뿔, 당장 뒤지고 싶은데 고맙긴 개뿔. 누가 나 좀 구해줘....’   

  

  우울증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아니, 차라리 미쳐 날뛰고 싶게 만든다. 미쳐 날뛸만한 에너지가 있었으면, 내가 침대에서 일어날 힘을 주었으면.. 그럼 얼마나 행복할까. 침대에서 일어나 밥이라도 먹고 씻고 제정신을 차릴 수만 있다면 좀 나을 것 같은데 그런 힘도 없다는 것.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일이다. 나의 우울감은 회사가 나에게 준 것 중 하나였다. 강력한 소속감과 안정감 그로 비롯되는 우울감. 남들은 좋아할 일들이 나에겐 숨 막힐 일이었다. 공직에 들어서자마자 들은 소리는 “너는 앞으로 40년 남았네”라는 말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요즘 같은 세상에 40년이나 일을 할 수 있다니!’ 한 게 아니라 ‘와, 나 왜 이렇게 빨리 들어왔지?’하는 의문에 휩싸였다. 여기가 얼마나 좋은 곳이라고 이렇게 어릴 때부터 들어왔을까.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윗사람들의 하루하루를 보면서, 나의 하루를 보면서 그 의문은 점점 커져만 갔다. 분명히 내가 선택한 일인데도 내 선택이 나를 죽음의 길로 이끌어가는 걸 보는 것이 더 지옥 같았다. 온전히 회사만이 나에게 우울증을 준 것은 아니었으나, 촉매제가 되어 날 힘들게 만들어갔다. 이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 더 자세히 말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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