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위해 굶는다

by 고요

아픈데 굶는다고? 아니 왜?

동물적 감각은 위험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몸은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긴장을 하고 ‘제 살 궁리’를 하며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순간의 실수로 손을 베어도, 단순한 감기에 걸리거나 돌연 암 선고를 받는 순간이 와도 처음에는 당황하고 절망하지만 이내 침착하게 크기와 정도부터 가늠할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은 나를 돌아보게 된다. 아, 순간 딴생각을 했구나. 어제 샤워를 하고 창문을 열어두고 잠이 들었거나 그동안 피곤했었구나. 스트레스받는 일이 너무 많았어. 요즘 좀 함부로 먹었지. 등등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쏟아부으며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졌지’라는 말로 수많은 변수들을 꼽아본다. 그리고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겼나'라는 원망의 시간이 지나면 대안을 찾는다. 찾은 대안이 삶의 변화로 이어진다면, 어쩌면 손을 베는 행위도, 감기몸살에 걸린 몸도, 깊은 병에 걸린 내 몸도 다행일 수 있다는 생각까지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답을 찾지 않으면 대체적으로 견뎌야 하는 과정이 힘들게 느껴진다. 하루하루 불안함처럼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게 없으니까.

어떤 일이 일어날 때마다 이런 지혜의 버튼이 빨리 켜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하지만... 그래도 슬프다.

그럴 수 있어 2018

언젠가부터 고민이 생길 때나 화가 날 때 하루나 이틀 단식을 하고 나면 생각은 정리되고 머리는 가벼워진다. 막연하게 배가 고프면 생각하기 힘들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배가 부르면 위로 혈액이 몰려 머리가 멍해지고 산만해진다는 것은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전 철학자들이 단식을 하고 산책을 하며 생각에 집중했던 것도 굶고 걷는 행위가 생각을 집중하기에 좋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가벼움을 알아서인지 본능적으로 힘들면 굶어버린다. 육체적인 고단 함이라면 상황과 고단함의 무게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지만 그것이 내적 혹은, 외적인 염증이라면 확실히 굶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렇게 단식을 시작하게 되면 집안 대청소를 시작한다. 청소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단식하는 첫날은 여기저기 서랍과 수납장을 열어 버릴 것이 없나 둘러본다. 그렇게 소비를 줄이고 불필요한 것을 버리게 되면 삶은 가벼워진다. 몸이 힘들어도, 마음이 힘들 때는 더더욱 폭식과 폭음을 했다. 술은 순간을 견뎌내기 아주 매력적인 대상이다. 사람들을 만날 때도 좋은 매개가 되어준다. 그런 술을 좋아한다. 이제는 좋은 술은 즐거울 때만 마시는 것으로 아껴두고 마음이 힘들 때는 마시지 않는다. 다음 날, 망쳐버린 자신을 발견하는 괴로움과 필름이 끊어진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이다. 사건이 벌어진 후 끊임없이 먹었다. 화가 나서 먹고 , 기가 막혀서 먹고, 슬퍼서 먹고, 가여워서 먹었다. 그리고, 여전히 끝은 보이지 않는다. 잠을 잘 수도, 깨어있기도 어려워 단식을 시작했다. 우선 단식하면 이른 시간에 잠이 든다. 그리고 단식 일기를 쓰게 된다. 물론 이런 것은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다. 잠을 못 자는 사람이 있고 낮에도 잠이 쏟아지는 사람이 있고 적게 자도 피곤하지 않는 사람 등등 단식을 하면 개개인의 서사에 따라 수백수천 사람이 각양각색의 대본을 쓰게 된다. 삶의 방식이나 태도에 따라 멜로, 공포, 판타지, 엽기, 막장의 다양한 드라마를 몸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막장보다는 멜러?


공포보다는 판타지를 꿈꾸지 않을까? 아토피를 친구처럼 여기는 마음 역시 결국 살아가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만든 나름의 대안이었다. ‘다행이다’라는 처방전이 꽤 유용할 때가 많다는 것은 다양한 변곡점을 지나 온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여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 않을까?

‘아토피는 내 친구”라는 말은 생활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수준 높은 처방이 되었었다.

살면서 외부로부터 고통을 받는 순간 마음속 상처들이 드러날 때 우리는 흔히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본다. 우리는 편하게 소독하고 밴드 정도 붙이는 행동 하나로 치료를 끝낼 수도 있다. 밴드를 붙인다는 것은 가장 편한 치료방법 중 하나이며 상처를 가리기 때문에 쉽게 잊힌다. 상처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 쉽게 딱지를 만들 것이고 이내 새살이 올라오면 나에게서 잊혀질 것이다. 나에게 닥친 고통을 들여다보는 것은 고통의 강도를 더 세게 만들 수 있어 어쩌면 잊는 것이 가장 편하고 때로는 특효약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상처는 아물었다 싶으면 고름이 잡히고 연고를 발라 잠재워도 다시 곪아서 딱지를 뚫고 나올 때가 있다.

결국 병원에 가서 매스로 째는 치료 후 항생제를 먹으며 더 오랜 시간 아물기를 기다려야 된다. 고름이 터져 나오는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일까? 몸이든, 마음이든 나를 지켜줄 힘이 부족해지면 제일 약한 부분부터 터져 나오게 될 것이다. 누런 고름이 그대로 보일 때도 있고 변질되어 피고름이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특히, 마음은 다른 형태로 변질되기 쉬어 이상하게 반응할 때가 있다. 왜 이런 행동이 나오는지 자신도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이다. 배신했던 애인을 쉽게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와 만든 관계에 의해 다음 사랑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 역시 관계 속에서 자기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부모와 친구 나를 포함한 사회의 모든 관계는 그 전의 관계들의 연속성 위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간다. 맞닥뜨린 고통의 기류를 바꾸는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상처는 드러내야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풍이 불어올 때 어떻게 하면 바람을 탈 수 있을까?

비껴갈까 아니면 멈춰서 방향을 바꿔볼까 바뀐 환경에 적응하느라 나만 바라보고 걸어가다 넘어졌다. 너무 세게 넘어져 상처투성이, 흉해졌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꽉 쥐었던 손을 펴서 손을 내밀었다. 생채기 난 손을 가족이, 친구들이, 동료들이 잡아주었다. 그리고, 방향을 수정하면서 천천히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조금만 달리 방향을 바꾸자 걷는 것이 편해졌다.


세상 바보가 바보세상에게


기다려봐! 바람이 너의 등을 밀어줄 거니까

언젠가 한 번쯤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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