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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n 28. 2021

기억채집

나에게 글쓰기는 기억을 모으는 일이다

기억채집

나는 어릴 때 밖에서 뛰어노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조용하고 생각이 많아서 혼자 놀아도 심심해하지 않았다그런 나에게 친구가 되어준 것은 책과 그림이었다보자기를 책상 아래로 늘어 트려 커튼처럼 만든 후보자기로 외부공간과 차단된 비밀아지트에 들어가 책을 읽거나 이불 위에서 뒹굴뒹굴 굴러다니며 책을 읽던 모습이 생각난다.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꽤 두꺼웠던 삼성문고하얀색 양장본에 금박으로 선명하게 박혀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또렷하지는 않아도 세계명작전집이라고 씌여 있었던 것같다지금의 책 두배 정도의 두께에 꽤 나 무거웠던 그 책이 집에 50권 정도 있었다. 100권이었나여튼 세계명작은 다 들어 있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 작은 아씨들과 대지를 외울 정도로 많이 읽었다고 한다솔직히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필름처럼 순간순간 이불 위에서 누워서 옆으로 책을 읽었던 모습만 파편처럼 남아있다외운다는 표현은 엄마의 말씀이시다

나는 늘 책을 읽었고 놀이처럼 그림을 그렸다고 말씀하셨다엄마가 양장점을 하셔서 외할머니가 집에서 돌봐주셨는데 늘 외할머니를 앉혀놓고 그림을 그렸다나에게 가장 호의적인 모델이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델이었던 할머니는 얼굴에 그릴 것이 많고 굉장한 미인이었다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할머니한테 책을 읽어주며 놀았다고 한다그러고 보니 이 때부터 였어‘ 책 읽어주던 역사가 그렇게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리게 되었다아이들 뱃 속에 있을 때부터 책 읽어주기는 시작되었고 아이들 학교에 가서는 학교반에 가서 책 읽어주었던 8년의 시간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신설된 학교에 입학하게 된 작은아이와 함께 등교해서 수업 시간 전 20분간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한 권을 읽어주었다엄마들을 조직해서 각반에 한 명씩 배정해 책 읽어주기를 하고 끝난 후 엄마들과 모여 소감 나누기를 했었다책을 통해 전달 되는 세계는 해 본 사람들만 안다고 할 만큼 설명하기 어려운 즐거움이었다이 행복감을 더 나누고 싶어 노인시설로 확대했었다내가 먼저 꺼낸 이야기인데  하루 읽어주고 포기했다책을 읽어주고 나오면서 만나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상상력의 가지를 퍼트려보니 진이 빠졌다.  7~80년된 그녀들의 사연으로 머리 속이 와글대서 그만두고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글을 쓰면서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기억들을 모으고 있었다오래된 기억 조각들이 일관된 흐름을 가지면 성향이 되고 시간은 역사로 연결되었다그렇게 기억을 모아 현재의 삶에 투영하면 숨겨진 나를 발견하는 지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 일들이 있었구나’ ‘그때도 그렇게 행동했었구나’ 나의 행동 패턴들을 보면 어찌 그리 일관성 있는지범죄 심리학자들이 범인의 행동 패턴을 연구해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 유추하는 것처럼 잠재되어있던 내 기억을 꺼내 흐름을 찾아보면 자신을 좀 더 알게 되지 않을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할 수도 있고 좀 더 나은 지혜를 발휘하는 센쓰까지도 얻을 수 있다그럴 수만 있다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들은 확실히 남는 장사이다.


 게다가 글을 쓰면서 불같이 끌어 올랐던 열도 서서히 내려가게 된다.  ”나만 왜 이래라는 자기연민에서도 자유로워지며 호흡은 점차 안정되어 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그렇게 글은 치유의 숲으로 안내하는 이정표이자 아주 편한 운동화 같은 것이다.  낡은 운동화가 편하듯이 빛바랜 나의 기억이 어디로 시간여행을 하게 될지 그것은 기억채집 여행을 떠나봐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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