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야기다

프롤로그

by 고요

프롤로그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주어졌을 때에는 생각의 파동이 이렇게 멀리 가게 될 줄 미처 몰랐다. 외부의 조건과 연결되는 ‘밖으로 향하는 글쓰기’는 사회와 욕망의 관계를 바라보는 기술을 필요로 하는 반면, ‘안으로 향하는 글쓰기’는 의식과 무의식 속에 숨겨진 기억을 채집하고 해체와 분류의 작업을 통해 유통기한을 정하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을 저장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며 단식을 안내하는 일을 통해서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일을 하는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단식을 하면서 단식일기를 쓰게 되었다. 모두 글을 통해 세계가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몸으로 쓰고 마음으로 읽는 일이기에 나에게 오감은 본능적으로 열려 있다. 그래서, 글쓰기로 무한한 가능성을 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글을 쓴다는 것은 일상에서 질문을 만들고 해답을 찾는 과정을 통해 잠재된 감각을 깨운다.


그리고, 요동치는 마음 안에서 중용을 지키며 고요한 나를 유지하게 만든다. 그래서,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만들어준다.


오랜 기간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했다. 일 년을 준비해 일주일간 소통을 하고 나면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갤러리에서 벗어나 카페, 도서관, 대학병원, 빈집, 온라인 전시, 아트상품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을 찾아 나섰다. 갤러리에서 벗어나니 사람들을 더 가까이 만날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 관람객과 차를 마시며 소통하게 되었고 결혼기념일 부인의 선물을 사러 온 부부관람객과 10년의 인연이 이어지기도 했다. 요양병원에 계신 노모를 모시고 온 인상 깊었던 관람객, 우연히 여행을 와서 잠시 들린 카페에서 만나 그들의 가족여행에 다시 초대받기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와 그림의 접점을 발견하는 건 또 다른 전시의 묘미이다. 빈집이 있는 오래된 마을을 직접 취재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그들의 다양한 삶이 그림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좀 더 자신의 이야기를 삶의 한가운데로 넣고 싶은 사람들과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기획들이 있다.


2019년에 기획했던 아트로드는 강원도에 숨겨진 작가를 찾아서 직접 만날 수 있는 여행프로그램이었다. 작가의 집과 작업실, 은밀한 그들의 공간을 들여다보는 즐거움과 진솔한 인터뷰시간을 함께 했던 참여자들의 반응은 가히 폭팔적이었다.


캡처44.JPG

여든이 넘어 열악한 작업환경과 치매, 시력을 잃어가는 극한 상황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자신을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원주 작가 이재걸. 군생활로 시작된 원주살이. 제자를 가르치며 원주 풍경을 잡아내는 데 오십여 세월이 그를 거쳐 갔다. 주변머리가 없어 이게 내 집이라 생각하면 오두막이라도 만족하며 산다는 노작가를 보며 욕심을 버린데서 오는 순수한 모습에 숙연해지지만 ‘가족의 삶은 어떠했을까?’ 라는 생각이 슬쩍 스친다.


작업과 삶의 일치에 작가로서의 잣대를 댄다면 삶은 또 어떤 현실인가.



내가 초로의 나이에 방문한 것이 차라리 다행일 수도 있었다. 그 자리에서 뛰쳐나오지 않고 낡은 벽난로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다. 댓가와 자존심. 욕망 사이에서 부단히 저울질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비추기에 저 멀리 있는 원평의 집. 2000여점을 원주 역사 박물관에 기증하였고 많은 제자들이 존경하는 원주 미술계의 역사라는 노장의 작업실은 뜨거운 난로가 무색하게 너무 추워보였다.(2019.4월원평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