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는 시민참여자들 중심으로 뜨개질을 배우고 전시회도 열었다. 수익금을 기부하는 의미 있는 일도 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82세 할머니강사님을 발굴한 것이었다. 늘 뜨개질을 하면서 한번도 사람들 앞에서 가르쳐본 경험이 없었던 그 할머니는 인기 강사가 되셨다. 전시회에서 손자의 멋진 꽃다발을 받으며 수줍어하셨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또, ‘술 익는 마을’이라는 가족프로그램은 아빠와 5살 난 아들이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고두밥을 식히려고 부채질을 연신 하며 웃었던 모습을 만들어 냈다. 함께 마시지는 못했겠지만 그들의 시간은 행복한 기억으로 저장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전각(도장)을 파면서 이름이 만들어진 역사를 이야기하게 되었고 부채에 그림을 그리며 자신이 아끼는 물건이 그림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다. 내가 기획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것은 이야기였다. 일상의 이야기를 전면에 걸고 일 년간 진행했던 ‘문득, 일상이 다가오면’ 프로그램은 일주일의 고단함을 잊으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앞으로의 삶을 그려보는 과정에서 ‘내인생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그들의 얼굴은 상기되고 입가의 웃음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야기보따리를 한껏 실은 리어커를 마을 꼭대기 정자가 있는 곳 벽에 그림을 그리고 타일에 사람들의 표정을 그려 붙이는 공공미술프로젝트를 막 마치던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사고가 있었다. 버스를 타려고 바닥을 딛는 순간 무릎연골이 파열되어 3개월간 입원과 재활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동안 바쁘다고 무시했던 몸이 그렇게 대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과로와 스트레스, 목협착, 만성위염, 식도염, 비만등 총체적 난국의 몸으로 단식을 하며 몸의 세포를 바꾸기 시작했다. 단식을 하면서도 단식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체중부터 몸의 상태, 운동량등등 하루 생활을 기록하는 것외에도 마음의 변화까지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단식은 단순히 체중을 감량하는 것 만이 아니라 혈액을 꺠끗히 만들어주면서 몸속 구석구석 청소를 하게 했다. 깨끗해지는 몸만큼 마음의 변화를 느끼게 되자 ‘단식, 뭐야 만병통치야?’ 단식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십오년전 아토피를 심하게 앓았던 두아이를 데리고 지리산마을로 들어가 단식을 했던 기억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랬다. 그때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지워버렸었다.
애써 지워버렸던 그 시간이 이렇게 기억하게 되다니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생각되었다.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제대로 해야했다. 단식을 하면서 둘쨰아이가 시작했고 막내 딸이, 그리고 큰아이가 단식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친정식구들까지 모두 단식가족으로 만들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림과 글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고 단식으로 몸을 치유하는 치유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며칠 전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무엇을 제일 하고 싶으세요?”
“......”
다음날 그에게 말했다.
“글을 쓸 거예요. 물론, 단식지도도 할거예요. 그림도 그리고 문화예술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할거예요. 왠지 아세요? 단식을 안내하면 그들의 하루 생활을 모니터하게 되요. 60여일을 가족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몸을 관찰하고 마음의 변화에 맞춰 코칭하고 있어요. 그러면 그들의 가족사를 알게되요. 그리고, 숨겨진 상처를 만나게 되기도 하지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울고 웃게 되죠.
그것은 때론 그림의 소재가 되기도 해요.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예요. 그림을 가르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바로 그거예요.
그들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일을 하지 않고 바닷가 모텔에서 하루종일 글을 쓴다는 것은 이젠 상상할 수조차 없어요. 나는 알콩달콩 사람들의 이야기가 피어나는 삶의 중심에 있을 거예요.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을 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