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채집2

by 고요


오랜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를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게 무슨 말이야?”.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같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나를 보고 말을 하고 있는데 나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 같아 처음에는 오해했다고 했다. 지금 사람들과 A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B도 아닌 저기 있는 F를 이야기하더라는 것이다. ‘젠 뭐지? 왜 자꾸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렇게 나에 대해 적응하면서 이제는 엉뚱한 소리를 하면 이렇게 이해한다고 한다.




“음,제 또 안드로메다 다녀왔구나!”

20190325_132636.jpg 기억채집


사람들이 A를 이야기하고 B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A나F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타인에게는 너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책을 꼼꼼히 읽어야 했던 시간이 모여 정독을 하게 했고 바로 흡수하기보다 질문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책을 읽을 때나 그림을 볼 때 질문을 하고 작가의 입장으로 답을 해보면 작품이 더 잘 보일 때가 있다.



오래된 이야기이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시작했던 영화스터디에서 영화공부를 시작했다. 매일 한편씩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는 과정에서 영화를 읽어가고 있었다. 영화이론을 배우고 작가론까지 3년간 재미있게 공부했고 단편 애니메이션도 만들게 되어 애니메이션 회사에 들어갔다.



6개월간 동화만 그리며 애니메이션이라는 긴 호흡에 질리기도 했지만 스토리 구성을 배우고 주인공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촬영, 편집등 다양하게 접해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글쓰기를 통해 분석적으로 영화를 보게 되는 눈을 키우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검열의 단계를 촘촘히 만들게 되었으니 쓴다는 것은 나름 자기 주도 학습법 아닌가?



글을 쓰면서 하는 되새김질은 오롯이 내용을 받아들이는 과정속에서 저항의 과정을 겪는다. 이 논리의 근거가 타당한 것인지, 작가가 감상에 빠진 것은 아닌지, 감독이 천재인지 미친놈인지! 그렇게 머릿속에 질문이 생기면 답을 찾기 전까지 수시로 안드로메다에 다녀오는 내 모습이 이렇게 정리되다니, 글쓰기의 놀라운 향연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다 잊어버린 과거가 이렇게 소환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땅속 고구마처럼 줄줄이 달려 나오는 기억은 20년, 혹은 3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다.


이전 03화기억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