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카타브라,
체리체리마법의 문을 열어줘!!!

by 고요

아브라카다브라

산다는 것은 기다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는 시간이었고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 그랬어야 했어,” “아! 그게, 신의 한 수였구나”라며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는 난감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조용하고 정적인 나와 180도 다른 남편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쓴 글이 있다. 사랑의 온도가 다른 두 남녀가 결혼하면서 겪어내는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만든 책이 <그와 그녀의 36.5도 >이다. 생각이 머릿속 가득한 나와 나의 원피스 잠옷을 입고 5살, 3살 된 아이들과 쇼쇼쇼를 벌이는, 다 큰 딸아이 앞에서 아이돌 춤을 추는 남편과 어떻게 사이좋게 지내야 할지 생각이 많았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미간은 잠시 떨리고 심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누군가 나를 비췄고 누군가를 흘려보냈다. 이제 긴 연주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가도 길들여지지 않는 것이 있다. 매 순간당황스러운 자신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 사람을 안다고 본질에 대해 아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을 알고 싶을 때 비로소 소통은 시작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자이거나 또는, 약자일 때 사랑의 권력 구조 안에서 서로에 대한 설레임은 어떻게 변질 될까? 사랑하지만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믿지 않는 것이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이고 고독은 혼자 누리는 즐거움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사랑 역시 거리 두기가 필요한 이유이다. 하지만, 결혼은 끝없는 관심을 필요로 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그 또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을 쌓아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와 그녀의 36.5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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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노래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우주의 근원적인 주제이며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이지 않을까? 낯선 환경에서 감각을 열어두는 시인은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것이다.

내 안에서 만들어지지 않고 스쳐 가는 것은 지식이 되겠지만 생각이라는 필터 과정을 거친 지식은 지혜를 만든다. 그리고 어떤 필터를 선택하는 기준은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레이다에 반응하는 기준에 따라 다르다. 그럼 각자의 레이다는 무엇으로 결정될까? 그것은 오랫동안 내재되어 있던 ‘소유(所有)’ 다시 말해 욕망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타인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정해 그 사람의 현실감이나 판단력을 잃게해 타인을 통제하는 것을 뜻하는 ‘가스라이팅’ 역시 타인을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소유’는 타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밖으로 향했던 것을 방향만 바뀐 것이지 나를 향하는 것에 있어서도 ‘소유’는 작동한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이니까 소유가 내 안으로 작동하게 되면 긍정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수십 번의 쨉을 맞아도 대차게 한 번 맞는 어퍼컷으로 엎어지기도 하지만 지나고 보면 삶은 수많은 쨉과 어퍼컷으로 나를 단련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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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생각을 한 것은 한 참 뒤의 일이다. “그래, 너는 새로운 길을 내고 있고 내일 또 넘어설 거야, 아브라카다브라!” 그러다 주문의 약발이 떨어지는 날에는 판타지 속에 나를 맡겨 버린다. “체리체리, 마법의 열쇠를 나에게 줘”라고 하면 신기하게도 마법의 열쇠로 문을 열릴 때가 있다. 당장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나를 상상의 세계에 맡기면 죽을 것 같은 순간도 빗겨 갈 때 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한순간이고 아무것도 아니다. 아브라카다브라! 말한대로 이루어져라 야야얍”


하지만 이것도 감정을 조절하듯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때론 자신을 향한 소유욕의 균형을 잃으면 자신이 보이지 않게 되고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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