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by 고요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해주고 싶었던 것은 음악과 책을 친구처럼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늘 음악을 가까이 접하게 해주었고 임신하면서 줄곧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큰아이를 앞세워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와서 읽었고 밤마다 남편과 번갈아 가면서 책을 읽어주었다. 그림책을 많이 보던 시기여서 ‘어린이 도서 연구회’에 들어가 꼼꼼히 목록을 살피고 토론을 통해 좋은 책을 선별하는 눈을 키워갔다.


그러던 어느 해 책 토론회 행사에 발췌를 맡게 되었다. 선정된 책이 <살아난다면 살아난다>였다. 일 년 중 큰 행사의 한 부분 발췌를 맡았으니 책을 곱씹고 곱씹어야 했다. 한 달 남짓 주인공의 시선으로부터 시작해 작가의 의도까지 깊게 생각 해보고 장문의 감상문까지 쓰면서 시선이 확장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작가의 시선까지 고려해 책 읽기를 확장하게 되었으니 내 인생의 책으로 충분한 자격이 있지 않은가. 지금도 책을 읽으면 수용자의 입장보다는 반대의 관점으로 책을 읽고 읽은 후에도 생각의 시간을 길게 갖는다.



어느 날 선배 전시회에 갔었다. 그곳에서 전시회 도록이나 책을 라면 받침으로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시회 도록을 만들지 않았다. 내용을 충분히 넣고 종이나 디자인에 신경 써서 도서로 등록하고 판매했다. 그렇게 ‘비어있는 달’이라는 1인 출판사가 탄생하게 되었다. 공을 들여 쓰고 만든 글과 책이 어느 작업실 낡은 테이블에서 라면 국물이 떨어진 채 굴러다니는 대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책을 만드는 일에는 정성을 쏟았다. 이렇듯 책의 존재도 의미가 분명해야 하는 데 하물며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어떤 감정의 곡선 위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될것인가.


캡처.JPG

재개발 계획에 술렁이는 오래된 마을이 있었다. 2~30년 전만 해도 번성했던 이곳은 노후되었고 떠나는 사람들로 빈집도 많았다. 하지만 텅 비어있는 마을 안에도 사람은 살고 있었다. 감각적으로 수많은 이야기가 존재하는 그곳을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문명의 발달로 점점 더 편리한 것을 원하는 세상에서 왜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을까? 결국,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실체는 그곳에서 뛰어놀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엄마, 할머니, 그 할머니의 엄마로 이어지는 수많은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다는 질문의 답이 찾아졌다. 의문을 해결하기 가장 좋은 것이 글쓰기이지만 언제나 한가하게 글을 쓸 수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1.JPG

하지만 다행히 나에게 글쓰기는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것만은 아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생각을 했고 청소기를 돌리면서 생각을 연장했다. 바쁜 육아와 일을 하면서 글을 쓰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지만 나에게는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어쩌면 모래알처럼 흩어진 생각들을 모으는 과정이 필요했고 그전에 고리들을 풍성하게 만들어 놓아야 했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길은 부딪쳐야 했다.


정-반-합으로 만들어지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정확히 짚는다면 헤겔의 유물론적 변증법은 사유의 시작은 모순과 부정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사물이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자연법칙처럼 인간도 상호작용을 하면서 변화되고 해체된다. 영화로 예를 든다면 놀란 주인공의 얼굴을 비추고 다음 장면에서 끓어 넘치는 냄비의 모습과 다음 장면에서 아이 모습이 편집되면 세 장면으로 우리는 아이가 위험한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각기 다르게 촬영되어도 편집과정을 거치면 새롭게 인식된다. 그리고 어느 날, 생각의 고리를 엮으며 나에게 던졌던 질문의 해답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외칠 것이다. 마치 “유레카”를 외치던 아르키메데스처럼 말이다.



모든 것은 운동하기 때문에 삶의 한가운데서 생각의 지평을 넓히게 되는 글이 가능하다. 안드로메다를 다녀왔다는 오해를 받아도 생각을 충분히 펼쳐놓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펼쳐놓은 구간 구간을 다니다 보면 잊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기억은 또다른 기억과 접속해 다른세상으로 안내할 것이다.



이전 04화기억채집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