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밖에서 뛰어노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조용하고 생각이 많아서 혼자 놀아도 심심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친구가 되어준 것은 책과 그림이었다. 보자기를 책상 아래로 늘어 트려 커튼처럼 만든 후, 외부공간과 차단된 비밀 아지트에 들어가 책을 읽거나 이불 위에서 뒹굴뒹굴 굴러다니며 책을 읽었다.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꽤 두꺼웠던 삼성문고, 하얀색 양장본에 금박으로 선명하게 박혀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또렷하지는 않아도 세계명작전집이라고 씌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책 두 배 정도의 두께에 꽤 나 무거웠던 그 책이 집에 50권 정도 있었다. 100권이었나? 여튼 세계명작은 다 들어 있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작은 아씨들‘과 ’대지’를 외울 정도로 많이 읽었다고 한다. 솔직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순간순간 이불 위에 옆으로 누누워서 책을 읽었던 모습만 파편처럼 남아있고 외운다는 표현은 엄마의 기억이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나에겐 행복한 놀이였다.
양장점을 하시던 엄마를 대신해 외할머니가 집에서 돌봐주셨는데 늘 외할머니를 앉혀놓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얼굴에 주름이 많아 그릴 것이 많고 굉장한 미인이셨던 할머니는 나를 무척이나 이뻐하셔서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최고의 모델이었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할머니한테 책을 읽어주며 놀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의 책 읽어주기 역사의 시작은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아이들을 임신했을 때부터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성인이 돼서 만나는 그림책은 새로운 세계였다. 그리고, 학교 교실에 들어가 책 읽어주기를 시작해 7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등교해서 수업 시간 전 20분간 그림책을 한 권씩 읽어주었다. 엄마들을 조직해 각반에 한 명씩 배정해 책 읽어주기를 하고 끝난 후 모여 소감을 나누었다. 책으로 전달되는 세계는 설명하기 어려운 즐거움이 있다.
그림책을 읽어주기 시작하면 공기의 파장을 따라 전해지는 아이들의 표정을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었고 그 파장으로 다시 그림책을 읽어 내려간다. 이렇게 기억은 오랜 시간을 거슬러 양말을 꾀매고 있는 할머니 옆에서 책읽어주는 꼬맹이를 꺼내고 있다. 오래된 기억 조각들이 일관된 흐름을 가지면 성향이 되고 시간은 개인의 역사를 만든다. 그렇게 기억을 모아 현재의 삶에 투영하면 나의 행동 패턴의 특징을 알아차릴 수 있고 숨겨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범죄 심리학자들이 범인의 행동 패턴을 연구해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 유추하는 것을 시사프로그램에서 많이 보았을 것이다. 잠재되어있던 내 기억을 꺼내 흐름을 찾아 미래를 예측해 보는 지혜를 발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은 확실히 남는 장사이다. 그리고, 힘들 때 “나만 왜 이래”라는 자기연민에서도 한 발짝 떨어져 자신을 볼 수 있게 된다. 당장 죽을 것 같았던 순간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글은 치유의 숲으로 안내하는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낡은 운동화가 편하듯이 빛바랜 나의 기억이 어디로 튀어갈지 그것은 “기억채집 여행”을 떠나보면 알게 될 것이다. 목적지의 좌표는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심리를 반영할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걷는 도보여행이 될 것인지 무작정 타고 종점까지 가는 버스여행, 혹은, 목적지가 중요한 ktx를 타게 될 것인지는 자신이 결정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