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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연 Jul 06. 2019

사이비 love

[space story]  07.  online

사기를 쳤다.


채팅에서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일주일 전 새벽 3시경이었다. 당시 심한 불면에 시달리던 나는 출근걱정을 하면서도 채팅 실을 배회하고 있었다.


딱히 누구와 대화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그 밤에도 사람이 득실거리는 그 곳에서 외로움을 달래려 했던 것이다.


나는 대기실에서 사람들의 아이디를 조회하는 재미로 시간을 보냈는데, 한 여자의 프로필에 등록되어 있는 사진을 보고 너무 놀랐다. 통신에 이렇게 이쁜 여자가 있다니……!!


당장 메모를 날려 보냈다.


[memo 나] 27. 설. 남. 직딩. 님은?

[memo 그녀] 24. 설. 여. 직딩.

[memo 나] 프로필을 봤습니다. 본인 사진인가요?

[memo 그녀] 네.


오케이! 나는 만사 제쳐놓고 그녀와의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역시 이쁜 애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어찌나 튕기던지.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나는 곧 바로 다른 아이디로 접속한 후 다시 그녀에게 메모를 날려 보냈다.


[memo 나2] 사진 함부로 올려놓지 마세요.


생뚱 같은 나의 첫 메모에 그녀는 곧장 반응을 보였다.


[memo 그녀] 왜요?

[memo 나2] 기분 나쁩니다.

[memo 그녀] 왜 기분이 나쁘죠?

[memo 나2] 이놈저놈 달려들게 뻔하잖아요. 어차피 내 여자가 될 사람인데.


나는 여자의 다음 반응을 기다렸다. 여자가 웃는 다면 일단은 나한테 넘어오는 것이고, 무시한다면 다른 방법을 간구해야 한다.


[memo 그녀] 하하. ^^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 채팅 실에서 그녀와 만났다. 대화는 끊이질 않았고,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상대를 만난 것도 처음이었다. 더욱이 그녀는 너무나 귀여웠고, 사려 깊었으며, 현명했고, 박식했고, 사진대로라면 너무나 이뻤다.


[나2] 오늘 하룬 어땠어? 누가 너한테 말로든 뭐로든 상처 준 일은 없었구?

[그녀] 오빠….

[나2] 응? 왜 그래? 너 안 좋은 일 있었구나?

[그녀] 오빠는 왜 그렇게 자상해?

[나2] 나 하나도 안 자상해. 너한테만 그런 거야. ^^

[그녀] … 나 오빠가 너무 좋아.


가슴이, 쿵 하며 떨어졌다. 그녀의 마음도 나와 같구나…….


얼굴 한 번 안보고 (물론 나는 그녀의 사진을 봤지만). 전화 통화 한 번하지 않고 단지 채팅 상으로만 누군가가 이렇게 좋아질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스스로 감동하고 있었다.


나는 모니터 저편에 앉아 있을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당장이라도 내 몸을 분해 시켜 랜 속으로 빠져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달려가서 그녀를 이 가슴에 끌어안고 ‘나도 그러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녀] 오빠 이번 국전 얼마 안 남았던데, 준비는 잘하는 거야?

[나2] 응? 으응…. 그럼.

[그녀] 오빠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떨어져도 실망할 필요도 없어. 알았지?

[나2] (뭉클) 알아, 임마.

[그녀] 난 오빠가 날 그렇게 불러 주는 게 너무 좋아. ^^

[나2] 어떻게?

[그녀] 임마라든가…, 녀석이라든가. ^^


귀여운 녀석……. 샐쭉이 웃고 있을 그녀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 했다.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고 있는 나 자신을 주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 오빠가 부업으로 하는 미술학원, 홍대 어디 근처야?

[나2] 아… 담에 만나게 되면 데리고 갈게.

[그녀] ……응.


하지만 나는 절대로 그녀는 내 미술학원에 데리고 갈 수 없다. 아니, 그녀를 만날 수조차 없다. 이유는 내 신상에 모든 것은 다 ‘사기’ 친 것이기 때문이다.


홍대 미대를 나와 국전을 준비한다는 것도, 홍대 앞에서 미술 학원을 운영한다는 것도, 내 키가 179라는 것도, 내 차가 티뷰론 터블런스라는 것도 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죽일 놈…….


솔직하게 내 자신을 밝히자면, 나는 영문과를 나와 조그만 여행사에 다니며 박봉에 시달리고 있고, 내 키는 163이고, 내 차는 마티즈였으며, 더욱이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사기는 바로 내가 <여자> 라는 사실이었다. (해서 위에 ‘죽일 놈’은 잘못된 표현이다. 난 ‘죽일 년’이다. T.T)


처음에 정말 이렇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저 너무나 이쁜 여자를 만났기에 호기심 반, 부러움 반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하루만의 장난으로, 심심한 밤의 재미라고 여겼던 그 ‘사기’가 이렇게 나를 난감하게 만들 거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직장에 나가 있는 시간에도 그녀를 생각하며, 빨리 밤이 찾아오기를 고대하게 되었다. 그러다 그녀를 만나면 행복에 빠져 있다가도, 그녀에게 한 모든 거짓에 대한 불안감으로 더 이상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 불면은 정도가 심해져서 나는 점차 핏기를 잃어갔다.


[그녀] 오빠… 보고 싶어.

[나2] …….

[그녀] 이젠 견딜 수가 없어. 왜 전화조차 해 주지 않는 거야?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녀의 말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 역시 그녀의 실체가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2] 만나자.


라고 해놓고 나서 나는, 그 날 새벽 내내 뜬눈으로 지새우며 내 정체성에 대해 색다른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여자다. 비록 사기를 치긴 했지만 나도 여자다. 그런데 왜, 어째서 여자인 그녀에게 이토록 끌리는 것일까?


나는 소장용 비디오박스에서 <금지옥엽>이라는 예전의 중국 영화를 다시 꺼내 보았다. 그 영화에서 장국영은 유명한 작곡가로 나온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여자가수를 키우지 않았다. 가수가 되고 싶던 영화의 여주인공은 남장을 해서 장국영을 찾아가 가수가 된다.


장국영은 그 앳된 남자 가수를 키우면서 점차 그에게 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고민고민하다, 동성애자인 제작자를 찾아가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다. 이 때 그 호모 제작자는 장국영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도 서른두 살 때까지 내가 호모란 걸 몰랐어.”


이 장면에서 나는 숨어 있는 나를 바라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나도 27이 될 때까지 내가 동성애자라는 걸 몰랐던 걸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여자와 키스하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나는 일단은 원초적인 고민을 배제하기로 했다. 일단은 코앞에 다가온 그녀와의 약속이 중요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그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녀 앞에 나타날 수는 없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약속장소인 피카소 거리의 카페에 30분 먼저 도착했다. 그리고 뛰는 가슴을 애써 가라  앉히며 그녀가 들어올 현관문을 눈이 빠지게 바라보았다.


약속시간에서 10분 정도 지났을까. 영화의 한 장면처럼 현관의 배경이 슬로우 장면으로 펼쳐졌다. 마치 순결한 베트남 여인처럼 흰 롱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들어섰던 것이다.


그녀의 사진은 거짓이었다. 사진 따위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다. 순간 나는 내가 남자가 아닌 여자인 것이 저주스럽다고 느꼈다.


그대로 시간이 40여분이 지났다. 나는 그녀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정말 사랑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비록 그녀 앞에 나타날 수는 없었지만, 그 동안 그녀와 나누었던 우리의 대화를 되새겼다.


그녀에게 너무나 미안했지만,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하겠지만, 이렇게 그녀를 볼 수 있어서 나는 행복했다. 이제 돌아가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그럴 듯한 이유를 대고, 통신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나는 계산을 하고 일부러 그녀를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그녀의 몸에서는 시원한 CK1 향내가 풍겨 나왔다. 더 이상의 미련을 남겨서는 안 된다. 나는 이를 악물며 그녀의 곁을 바로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바로 그 때였다.


“오빠!”


온 몸의 근육이 경직되며, 온 몸의 혈관이 수축되었다. 설마......?


나는 놀란 눈을 치켜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무시한 채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에게 다가갔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그 남자 왜 나타나지 않는 거야?”


“약속을 어길 사람이 아니야. 조금만 더 기다려봐.”


“오빠, 정말 이상해. 그러게 왜 통신에서 여자라고 사기를 친 거야?”


그녀의 오빠라는 남자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매우 서글픈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하지만 한번은 꼭 그 사람을 보고 싶어.”


나는 얼른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그만 카페 통로에서 주저앉았을 지도 모른다.

카페에서 나와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를 못했다. 그의 서글펐던 눈빛이 자꾸 뇌리에 남았다. 그 눈빛은 지난 일주일 내내 거울에서 볼 수 있었던 내 눈빛과 같았다.


나는 사기를 쳤지만, 사기를 당하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내 가슴속에는 왜 이리 새로운 희망이 뭉클뭉클 올라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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