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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연 May 10. 2019

삶은 언제나 '신호'를 보낸다.

[일상에서 낚아 올린 통찰]   02.

지난 토요일, 사당역 사거리에서 접촉사고를 당했다. 나는 2차선에서 좌회전을 하고 있었고, 버스가 내 오른쪽 차선에서 같이 돌았다. 버스가 너무 붙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고가 일어났다. 그 순간 나는, 올  것이 왔다, 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 20년 만에 첫 사고다.

      

20대 후반, 처음으로 차를 사고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아니, 별의별 짓을 내가 했다. 운전 1년 차. 세상에 드라이브만큼 재밌는 게 없던 시절, 나는 운전을 하면서 통화를 하고, 김밥을 먹고, 화장을 했다. 맨 얼굴로 나와 사무실로 가는 동안 마스카라까지 풀 장착 할 수 있었다.      


가장 심각했던 행동은 음주운전이었다. 강남에서 술을 마셨는데, 깨어난 곳은 홍대 주차장이었다.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 자신도 놀랐을 정도다. 그때 죽지 않은 것은 신의 보호가 아니었으면 설명할 수가 없다.      


몇 년 동안 수십 번의 음주 운전 만에, 처음으로 검문에 걸렸다. 혈중 알콜 농도 0.56. 백일 정지가 나왔다. 그날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쓰는 와중, ‘형사님, 담배 한 대 펴도 돼요?’라고 했다가, 그 형사님이 기막힌지 웃었다. 둘이 같이 경찰서 뒤편에서 맞담배를 폈다. 그 음주 검문에 걸린 이후로, 다시는 음주 운전을 하지 않는다.

    

또 한 번 기막힌 짓이 떠오른다. 주유등이 들어오고 몇 킬로미터나 더 운전할 수 있는지 실험하던 때가 있었다. 오늘은 15킬로미터, 다음은 20킬로미터. 이런 식으로. 그날은 거의 막바지라는 느낌이 들어서, 주유소로 가는 중이었다. 나는 신호대기를 기다리다가, 파란불로 바뀌자 차를 출발시켰다.


순간 자동차가 ‘푸드득’ 병든 닭의 마지막 몸짓처럼 떨리더니 그대로 시동이 꺼지고 말았다. 그때는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다. 너무 놀란 나는 공중전화를 찾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가, 습관적으로 자동차 락을 걸어 버린 채 나왔다.      


그곳은 홍대 사거리였다. 때는 러시아워였다. 멈춰버린 채 문도 잠겨버린 내 차 때문에 일대 교통이 순간 마비되었다. 보험회사 직원이 도착할 때까지 20여분동안 나는 정말 땅굴이라도 파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보험회사 직원은 2리터짜리 페트병에 담긴 휘발유를 들고 내 차의 빈 위장을 채워줬고, 이상한 쇠막대로 내 차의 문을 열어줬다. 그는 구원자였다. 그 다음부터 주유등이 들어오기 전에 기름을 채웠다. 미친 짓은 한번으로 족하다.     


또 많다. 나는 서울 시내 전역의 자동차 견인소를 다 가봤다. 불법 주차했다가 동서남북 견인소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속도위반, 신호 위반은 애교였다. 중부 고속도로에서 액센트로 160킬로미터가 넘게 달리며 앞차를 위협하기도 했고, 고속도로에서 칼질은 예사로 했다. 운전에 겁이 없던 시절, 초보를 벗어나 몇 년 동안은 망나니처럼 운전했던 것 같다.      


그러다 운전 5년차를 넘어가던 때, 나는 저절로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운전이 완전히 몸에 익고 나서야, 나는 운전이 무서운 것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끝장날 수 있는 것이 도로 위의 자동차였다. 특별히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저, 운전이라는 행위를 하면 할수록, 자동차라는 것이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이것이 가진 위험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 모든 뻘 짓을 다 한 후에야, 내가 얼마나 미친 상태로 운전을 해왔는지 깨달았고, 살이 떨릴 지경이었다.     


무사고 20년. 하지만 이것은 서류상의 기록이다. 내 운전 체험 속의 진실은 죽지 않은 게 다행인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물론 초창기 몇 년 동안이다. 그 이후 나는 안전 지상주의로 운전하는 모범 운전자가 되었다.      


그런데 지난 주, 드디어 사고가 났다. 나는 ‘사고가 일어날 줄’ 예상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아무런 사고 없이, 안전하게 운전해 오면서 나는 또 오만해졌다. 속도도, 신호도 잘 지켰지만 나의 오만은 스마트 폰으로 드러났다. 운전을 하면서 카톡을 하고, 운전을 하면서 여러 게시판의 글들을 읽었다. 운전은 내 몸이 알아서 하는 일이었고, 나는 다른 일을 해도 된다는 오만 속에 빠져 있었다.      


한 달 전, 그 오만에 제동을 거는 일이 벌어졌다. 수영 레슨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서 좌회전 신호대기에 걸리는 일이 자주 있다. 앞차를 쫓아가면 괜찮았는데, 문제는 내 차가 맨 앞에 기다릴 때였다. 스마트 폰을 보다가 파란 불로 바뀌는 순간 아무 생각 없이 차를 출발했다.


그때 빠앙--! 하는 요란한 경적이 울렸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건너편 차들이 직진을 하고 있었다. 그랬다. 파란불은 좌회전 신호가 아니라 직진신호였다. 놀란 나는 비상등을 켜고 주춤주춤 후진해야 했다. 내가 서행이 아니라 급출발을 했다면, 큰 사고로 이어졌을 순간이다.      


이건 ‘시그널’이다. 명확했다. 운전에 집중해야 된다는 신호. 그런데 보름쯤 지나서, 나는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상태로 또 한 번 스마트 폰을 보다가 출발했다. 이번에는 경적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빠앙---!!!”     


두 번 째다. 나는 같은 실수를 두 번 하고 말았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지 못했다. 밥을 먹을 때는 밥만 먹듯이, 운전을 할 때는 운전만 해야 했는데 나는 몇 번이나 진실을 놓쳤다. 그리고 지난주에 드디어 진짜 사고가 일어났다. 내가 삶이 보내주는 시그널을 무시한 결과였다. 그것을 아는 이상, 나는 이 사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토요일 점심 때. 사고가 난 사당역 사거리는 복잡했다. 일단 교통 흐름에 방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에, 차를 갓길로 뺐다. 버스도 나를 따라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주차했다. 버스 기사님은 내리자마자 인상을 쓰며 말했다.     


- 그렇게 밀어붙이시면 어떡해요!     


나는 평온했다. 첫 사고였지만, 내 삶에 벌어지는 것은 모든 것은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나는 온화하게 말했다. 미소까지 지으면서.     


- 저는 제 차선을 지켰어요.     


그랬다. 나는 차선을 잘 유지했다. 밀어붙인 것은 버스 쪽이었다. 그래도 복잡한데 어쩌구저쩌구… 하는 기사님을 뒤로 한 채, 차부터 살폈다. 오른쪽 앞 범퍼가 10센티미터 쯤 찢겼다. 사이드가 긁힌 것도 아니고, 큰 사고가 아니었다. 다행이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감사기도를 올렸다. 고맙습니다. 이 정도 작은 접촉 사고로 갈음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이 보내 주신 두 번의 시그널을 무시하고, 운전에 여전히 오만했던 저를 깨우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 운전을 하면서 스마트 폰이든 그 어떤 것이든 다른 것에 마음을 뺏기지 않겠습니다, 라고.     


보험 회사에 연락하고 기다리는 10 여분 동안, 나는 평온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기사님을 바라보았다. 나는 삶이 보내준 시그널을 무시했는데, 저 사람은 무엇에 마음을 뺏겨 이 사고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되었을까.


- 승객 분들이 많이 기다려야 돼서 어떡해요? 바쁘신 분들도 있을 텐데.     


내 걱정에 기사님의 표정이 좀 놀라는 가 싶더니, 이내 많이 누그러진 태도가 되었다. 우리는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 컴플레인 거는 승객들이 있을까봐 걱정이에요. 브레이크만 세게 밟아도 병원 간다는 사람이 있거든요.

- 와, 그건 좀 심한데요?      


이런 대화를 나누는 중에, 내 쪽 보험회사 직원이 나왔다. 사고 난 부위 사진을 찍고, 기사님과 몇 마디 나누고서 버스는 출발했다. 잘 들어가세요, 라는 나의 인사를 받고 나서.      


보험회사 직원이 나에게 물은 첫 번째 질문.      


- 사고 난 당시 사진은 찍어 두셨죠?

- 안 찍었는데요.

- 그걸 찍으셨어야죠!

- 몰랐어요. 첫 사고라. 당황해서.     


해맑게 웃는 내 얼굴에 기사도 따라 웃었다.     


- 블랙박스는 있으시죠?

- 네! 있어요!      


블랙박스가 해결해 줄 것이다. 하지만 내 차의 블랙박스를 확인하던 기사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 이거 하늘만 찍혀 있는데요? 이걸로는 누구 과실이 더 큰지 증명할 수가 없어요.     


내 블랙박스는 차 출고 후 장착된 후로, 한 번도 재생시켜 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지난여름 강한 햇살에 접착력이 약해서 떨어져 내린 후, 그걸 다시 붙이면서 내가 제대로 위치를 잡지 못했나 보다. 이걸로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사라졌다. 진실을 아는 것은 나와 기사님뿐이다. 그리고 버스 회사 쪽에서는 양보하려 하지 않을 확률이 컸다. 별 수 없었다.


보험 접수를 하면서 나는 무사고 20년 경력에 드디어 줄 하나가 가겠구나 생각했다. 그것은 나의 책임이다. 사고 당시 표면적으로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었으나, 내 의식 속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명확히 자각하고 있었다.


이 사고는 나를 위해 일어난 사고다. 범퍼 조금 찢긴 정도로, 버스의 깜박이등 하나가 깨진 정도의 작은 사고로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험으로 다시 한 번 각인할 수 있었다.     


삶은 이렇게 말한다. 체험으로. 이것이 삶이 말하는 가장 강력한 방식이다. 우리가 면밀히 살피지 않아서일 뿐, 삶은 큰 일이 닥치기 전에 신호를 보내준다.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며 한탄한다.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큰 병에 걸리기 전에 몸은 먼저 피곤을 알린다. 일이 잘못 되기 전에 먼저 작은 뒤틀림이 생긴다. 초기에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보통은 무의식 적으로 살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의 일상을 면밀하게 살펴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알아채고,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진실로 말하건데, 초기에 그것을 자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삶에 고통이 줄어든다. 작은 꼬임에서 그것을 풀 수 있는 단초를 찾게 된다. 일이 정말 잘못되기 전에.     


그 토요일 나는 예정되어 있는 모임에서 행복하게 보냈다. 그 다음날 또 다른 모임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사고는 지난 일이다. 그것이 나에게 어떤 손해로 다가온다 한들 상관없었다. 그 작은 사고로 인해 나는 신의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했으므로.     


그리고 연휴가 끝난 화요일, 보험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 이상한데요. 하늘만 찍힌 블랙박스 영상을 보고, 버스 회사 쪽과 싸워야 할 거라고 예상했거든요. 그런데 버스 회사 쪽에서 다 책임지겠다고 하네요. 이런 일 보통 드물거든요. 그쪽에서 연락이 갈 겁니다.     


곧이어 버스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내용을 들어보니, 버스 기사님께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개인 책임을 지겠다고 했단다. 아마 패널티 문제로 개인부담을 자청하셨나 보다.     

 

- 그럼 기사님 개인 부담이 커지잖아요. 일단 저한테 전화를 좀 해달라고 하세요.     


세 번째로 버스 기사님의 연락이 왔다.      


- 아니, 버스 회사 너무 웃기네요. 사고를 기사님들에게 개인 부담시키면 어떡한데요?

- 회사가 어디 기사들 입장을 알아주나요.

- 에고. 힘드시겠다. 어차피 범퍼 조금 찢긴 거라 교체까지 안 해도 돼요. 그래도 아무것도 안 받으면 제가 서운하니까, 10만원만 보내세요.      


기사님은 몇 번이나 고맙다고 한 후에 전화를 끊었다. 나는 속으로, 신께 감사를 드렸다. 신은 내 삶을 언제나 바른 상태로 봉합해 주신다. 나쁜 일이 나쁘게 끝난 적이 없다. 언제나 해피엔딩이다. 나의 무사고는 다시 이어졌다.      


내가 한 일은, 평온하게 있는 것. 화내지 않는 것. 나쁠 것 같은 일 속에서 감사를 찾는 것. 내 앞에 벌어지는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뿐.     


삶이 신이다. 그래서 삶이 하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체험은 신이 말하는 가장 강력한 방식이다. 매 순간 그것에 귀를 기울여라. 지금 이 순간, 삶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시그널을 놓치지 마라.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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