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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연 May 08. 2019

한번에 하나씩의 통찰.

[일상에서 낚아 올린 통찰]  01.  

나의 첫 통찰은 언제였을까.     

이십대 초반, 살아가는 자체가 버겁던 시절이었다. 언니에게 30만원을 빌렸고, 그 돈을 갚아야 했기에 현금 서비스 3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언니를 만나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지갑을 잃어버렸다. 돈 30만원은 그렇게 내 삶 속에서 사라졌다.  

   

그때 난리가 났던 쪽은 언니였다. 그게 어떤 돈인데, 현금 서비스 받은 돈인데!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마음 속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사라진 건, 어쩔 수 없잖아. 다시 돌아오지 않는 걸 가지고 괴로워하면 뭐하겠어.


그때는 의식적으로 살던 때가 아니라, 그것이 통찰인지도 몰랐다. 그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후, 암벽등반을 즐기던 언니가 북한산에서 낙상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언니의 구조가 9시 뉴스의 단신으로 나올 정도였다.


발목이 완전히 부서진 언니는 병원에 수술 받으러 들어갔고, 나는 속옷과 필요한 옷가지를 챙기기 위해 언니 집으로 향했다.  오래 따로 떨어져 살았고, 언니와 나는 잘 맞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언니의 집에 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곳에서 필요한 물건을 챙기며 나오다가, 나는 좁은 거실 탁자에 쌓아져 있던 명함크기의 전단지 뭉치를 보며 멈칫했다. 그것은, 자동차 와이퍼에 자주 꽂혀져 있던 ‘급전대출’ 전단지였다.  당시 나는 운전을 했고, 주차된 차로 올 때마다 누군가 꽂아 둔 그 명함크기의 쓰레기들을 치우면서 투덜거렸었다.


“이런 걸 누가 꽂아 두는 거야? 귀찮게시리!”     


그런데, 그걸 꽂아둔 것이 나의 언니였다. 나하고는 달리 평생 열심히 일하며 돈을 모아야 한다는 강박에 쌓인 언니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아르바이트로 그 일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오래도록 서럽게 울었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통찰이었다.


<그 누구라도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가 나의 가족일 수도 있다.>     


영성에 눈을 뜨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에고적이었지만, 그래도 삶은 천천히 변화했다.  그 변화를 이끈 것은, 삶에서 배운 크고 작은 통찰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 내 속마음을 먼저 열면, 상대방은 더 큰 마음으로 다가온다는 것.     


- 지금 손해 보더라도 상대를 미워하지 않으면, 손해 본 이상의 경제적 가치가 돌아온다는 것.     


- 내가 누군가에게 준 것은 그로부터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예기치 않은 다른 방식으로 선물처럼 쏟아진다는 것.     

- 남들 눈에 심하게 게을러 보일지라도 한정없이 늘어져 있다보면, 몹시도 심심해져서, 창조적인 일을 스스로 찾게 되더라는 것. (내 좋은 글은 모두 이런 시점에서 나왔다. )


- 몇 주간, 몇 달간 밤새 보며 애정하던 TV가 이제는 장식품이 되어 버린 것.


- 숨 쉬는 것 외에는 운동을 왜 하는지 도통 모르던 내가 이제는 운동 매니아가 된 것.  


내  삶의 선호가 바뀌었다, 긍정적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내가 애써 노력하지 않고서도.     

최근 기억나는 멋진 통찰은, 작년의 일이었다.  


10년이 넘게 드라마 작업을 못한 채, 매일 준비만 하는 지난한 삶이 이어졌다. 드라마 업계에서 10년 이상 작업을 못하면 폐기물 취급을 받는다.  그 어떤 제작사에서도 찾아주지 않고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나처럼 폐기 수순을 밟아야 하는 작가에게 내가 속한 제작사들은 늘 함께 일하자고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몇 개의 아이템을 갈아엎으며 작업 중이다.

    

문제는, 내가 수정작업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 그래서 대본이 나왔을 때, 조금 수정하자고 하면 나는 아예 새 대본을 써 냈었다. 처음 것에 무언가 좋은 게 있어 수정하자고 한 것인데,  나는 새로운 작품을 써냈으니 이 작업들이 이어질 리가 만무했다. 이렇게 수도 없이 엎어지기를 반복해 왔었다.


내 대본은 언제나 1, 2부에서 멈췄다. 유산한 아이처럼, 그렇게 사장되어 갔다. 현재 작업하고 있는 아이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 불쑥…  하나의 통찰이 찾아들었다.     


“내 아이들을 더 이상 죽이고 싶지 않다. 포기하지 말자.”     


돌이켜보니, 나는 제작사가 좋다고 생각한 아이템들을 깊이 파지 못하고, 계속해서 용도파기 하고 있었다. 나 스스로. 내가 먼저 포기하는 것으로.     


그 통찰이 찾아들었을 때, 저항감도 들었다. 수정하기 싫어하는 내 에고의 강력한 저항감. 하지만, 나는 그것이 내 삶을 바꿀 통찰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지금, 포기하고 있지 않다. 계속 쓰고 있다, 장점을 놓치지 않은 채. 물론 여전히 지난한 수정 작업 속에 있지만.     


작년에 생긴 내 새로운 취미는, 수학문제 풀기였다. 중학 3년 과정을 마치고, 현재 고등과정을 풀고 있다. 수학문제를 풀면서도, 나는 작은 통찰을 맛 봣다.  내가 틀린 문제의 8할은, 그 해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의 실수였다. 혹은 마이너스 기호를 빠뜨리는 실수였던지.     


그때 알았다. 내가 몹시 신중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걸. 삶을 대충대충, 대해왔다는 걸. 그 이후, 대본을 쓸 때돟 훨씬 더 신중한 자세로 대하고 있다.  수학문제를 풀면서도, 우리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그것이 삶이 주는 통찰이자, 신의 조언이다.     


한 번에 하나씩의 통찰.

그 작은 것들이 모여서, 깊은 깨달음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의 작은 것들을 뭉개서는 곤란하다. 삶에서 자신이 깨친 그 작고 소중한 것들을 잊지 않고, 그 즉시 삶 속에 적용시킬 때에야, 삶은 변화를 시작한다.     


모든 깨달음은 점진적이다. 지금이라는 하찮게만 보이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살 때, 그것들이 산처럼 쌓여, 거대한 풍경을 이룬다. 여전히 에고는 종종 나를 지배한다. 그래도 괜찮다, 그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기에.


나는 다시 지금 이 순간에 몰두하고, 신의 은총처럼 찾아들 통찰을 모래사장의 사금처럼 찾아낼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실은, 모래사장의 모래알들이 모두 빛나는 사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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