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의미를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네요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이 작가에게는 필수적인 일이죠.
지난해 말경에 한 작가님께서 "작가란 매일 글을 써야 작가다"라고 쓰신 글을 읽고서 나도 각성을 했습니다만, 긴 세월 동안 몸에 젖은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서는 달인의 길인 일만 시간의 법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면서도,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에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 참 이상했습니다. 이 습관도 삼 년간 꾸준히 바꾸어 나가면 반드시 고쳐지고 말 텐데 말이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에 관해서 마음을 쓰지 않고 하는 일은 그렇게 해 나가기 쉽지만(?), 사람들 앞에 내보이는 일에서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음먹고서 바로 실행에 옮기기에는 부족한 모습이 너무 많은 것이죠.
부족한 것이 많은 것은 인간의 참모습
얼마 전 읽은 책에서 니체인가 칸트가 했던 이야기에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천재적인 사람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모습을 보면서 그들과 자신과는 수준이 다르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 천재적인 사람도 우리가 감상하고 있는 탁월한 모습, 예를 들면 손흥민과 같은 골 감각이라든가, 손열음과 같은 놀라운 연주 실력,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놀라운 스피치를 하는 사람들도 수 없는 연마를 통해서 그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천재적인 사람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사람들의 그 지루하고 끈질긴 훈련의 모습을 매일 본다면, 감동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중간이 생략된 것 때문에 사람들은 감동을 한다는 사실이지요.
탁월함이란 긴 세월의 꾸준한 노력의 결과
너무도 당연한 말이죠. 꾸준한 노력이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는 것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도 당연한 진리를 왜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것일까요?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잘 생각해 보면, 인내력을 가져야 할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절실한 의미를 갖게 되면 그것이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내가 매일 얼마나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는 가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지는 것이죠.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각자가 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에게 지금의 삶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얼마만큼 생각하고 사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조상은 이런 것에 대한 지혜가 참 많았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을 가장 대표하고 있는 말이 다음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양감사도 자기가 싫으면 하지 않는다."
평양감사가 얼마나 좋은 자리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한양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왕과 같이 누리던 자리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던 자리였을 겁니다.
그런 자리도 "내가 싫으면 안 한다"는 결심을 할 정도로 삶의 의미를 생각했다는 것이죠.
내가 아는 지식이 많지 않아서겠지만, 외국에는 그런 말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탁월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냥 삼시 세끼를, 먹고 싶은 것을 부족함 없이 먹고, 누리고 싶은 것을 넘치도록 누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살고 있는 것인지.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비난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단 한 번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대로 된 작가가 되기 위해서 부족한 글을 매일 써 가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