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왜 그리도 분한 마음이 가득 했었는지,
그때 내가 분노 때문에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습니다만,
마음이 자주 불편했던 것만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화가 나니, 내가 해야 할 일들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럴 떼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즐거운 마음이 되어보고자 했습니다
마시고 떠드는 동안에는 문제가 해결된 것 같았는데,
아침에 잠이 깨고 나면 더 불편한 마음이 되었지요.
그렇게 많은 시간을 살아 오면서
머리 속에는 나의 계산법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화나게 하고 있는 사람은
내 마음이 심하게 불편하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 생각이 되면서
정작 불편해졌으면 하는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고
나는 분한 마음 때문에 고통을 하고 있으니
내가 바보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매우 이기적이기는 했지만요.
내 마음을 엉망으로 만든 것은 그 친구인데
그 친구는 멀쩡하고 나는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그때 마음속에 떠오른 것은
그만 손해 보자!
이것이었습니다.
성경의 잠언은 지혜의 말들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좋은 말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실천하기 힘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별로 읽지 않았던 책입니다.
잠언에서는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을까?
그것이 알고 싶어 졌습니다.
분노가 들어간 구절을 찾아보니 8개쯤 보이더군요.
(아마도 더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도 내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16:22 )
참으로 중요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사보다 낫다.
분노를 참는 것이 용사보다 낫다.
화나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사람은 왕보다 낫다.
용사라는 게 어떤 사람입니까?
감히 덤벼들었다가는 가는 거 아닙니까?
분노를 참는 사람은 그보다 더 강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분명히 용사보다 낫다고 했으니, 그대로 믿고 따라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성을 빼앗는 자. 왕 아닙니까?
왕 보다도 낫다니,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이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화나는 일로 속이 타는 일이 점점 줄어갔습니다..
때때로 분한 생각 때문에 고통 받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두지는 않게 되어갔습니다.
이런 습관이 거듭되면서
나 자신의 마음을 내가 다스릴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그로 인해서 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는 것.
이것이 나를 크게 변화시켜 왔다고 생각합니다.
손해 보기 싫어서 찾은 것이 정신적으로 많은 소득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따져야 할 때 제대로 따지지 않아서 물질적인 손해를 보는 경우가 가끔 생깁니다.
다투는 것이 싫으니까 양보해 버리는 것이죠.
착하게 살면 나중에 보상이 있겠지 하는 기대를 하며 양보를 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노를 참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습니다.
대등한 입장에서 착한 마음이 아닌 선한 마음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지금과 같이 악이 성행하는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분노를 다스리는 것과 양보를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죠.
감정적인 문제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툼이 생기지 않도록 사는 것이 가장 올바른 모습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