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성진 Jul 26. 2024

두려움, 그것은 무엇인가의 다른 표현입니다

뒤집어 보면 보이는 선물

대학 입시가 끝나고 합격작 발표가 나기까지는 시간이 비어 있었다.

동기생 둘과 내 동생과 함께 대관령 스키장으로 갔다.

시외버스를 타고 우리나라 언덕 중에서 제일 높다는 한계령에 도달했을 때, 설경은 말로 표현할 수없이 아름다웠다. 사진으로는 본 적은 있지만, 실제 나의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뭇가지에 쌓여 있던 눈이 녹아서 다시 얼어 붙었고, 그 위에 새로운 눈이 쌓여 어름가지가 신비로웠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대관령 스키장은 지금처럼 리프트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높지 않은 언덕에 눈이 덮여 있었고,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분 남짓이었다.

그렇지만, 활강을 하기 위해서는 슬로프를 스키화를 신은채 스키를 손에 들고 올라가야 했다.


하루종일 타 봐야 20여 회 활강할 수 있을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매번 걸어서 올라가야 했고, 시간이 상당히 걸렸기 때문에 밤이 되면 몸은 녹초가 되었다.


넷이서 이불을 덮고 자려는데, 민박의 창문이 열려 있었다.

몸이 고단하다 보니까, 추워도 닫을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넷이서 버티기 경쟁이 시작되었다.

추운 사람이 닫으라는 경쟁.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 없는 경쟁이었지만,

먼저 닫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누구를 위한 자존심 경쟁인가"


결국은 누구도 창문을 닫지 않고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불어 들어오는 방에서 잠을 자고 말았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자면서 내뿜었던 숨 속의 수증기가 입언저리에 얼어붙었을 것이고,

아침에 서로 멋쩍은 표정들을 지었을 것이 분명하다.


살면서 후회하는 일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게을렀기 때문인 것을 깨닫게 된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으면서도 수년간 글을 올리지 않은 나도 게으른 사람 중의 하나다.

매일 빠지지 않고 글을 올리는 작가들처럼 나도 글을 계속 올려 왔다면, 1,400편 이상의 글이 쌓여 있을 것이고,

구독자 수도(모르겠지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글을 올리지 못한 이유는 게으름이지만, 내가 가졌던 마음은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은 게으름의 다른 표현입니다


두려움은 게으름의 다른 표현이다.


처음으로 연단에 서서 발표를 해야 하는 일이 자기에게 주어질 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그 자리를 모면하려고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강단에 서야 하는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것이 두려움이다..

"내가 과연 청중들 앞에서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두려움으로 심장은 뛰기 시작하고 얼굴은 붉어지기 시작한다.


누구였는지 헷갈리고 있지만, 빅터 프랭클 아니면 조지 베일런트였을 것이다. 

둘 중의 한 사람이 자신의 첫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리브리움을 복용했다.

그 덕분에 마음이 진정이 되어 무난히 발표를 마쳤다.

그는 이렇게 회고를 하고 있다.

"그러나, 리브리움의 약효는 복용 후 30분이 지나야 나타난다고 했는데,

나는 복용하고 5분 후에 강연을 시작했던 것이다."

마음이 안정된 것은 리브리움의 효과가 아니었던 것이다.


강단의 계단을 오르면서 지독한 공포가 몰려온다.

그러나 어떡하나. 올라왔으면 시작을 해야지.


굳은 표정과 자대배치 후 신고하는 신병처럼 몸은 꼿꼿하게 된 채로  입을 연다.

눈은 청중을 향하지 못하고, 연단의 원고만 바라보고 읽기 시작한다.

때때로 여유를 보이려고 청중을 바라보지만, 얼굴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말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읽는다.

발표 예정 시간은 8분인데, 6분도 안되어서 끝나고 만다.


발표가 끝나고 내려오면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헤르만 어빙하우스의 망각의 법칙에 들어맞지 않은 결과를 경험한다.


그러나, 그다음의 기회가 오면 전혀 다른 모습의 연자가 된다.

발표제한 시간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8분 안에 발표해야 하는데, 원고의 반도 끝나기 전에 경고 벨이 울린다.

2분 오버타임!


횟수가 거듭될수록 원고 같은 것은 볼 필요도 없이 입에서 술술 말이 쏟아져 나온다.

청중 하나하나를 둘러보면서 여유롭게 강연을 즐긴다.


명강사로 청중의 인기를 얻고 있는 사람들도 예외 없이 거쳐야 되는 과정이다.

두려움을 넘어서는 과정이다.


성경 잠언에 이런 구절이 있다.


"게으른 자는 문 밖에 사자가 있다고 하느니라"


이미 수천 년 전에 두려움은 게으름의 다른 표현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