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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진 Aug 05. 2024

내 루틴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매일매일을 기록하기

새벽에 잠이 깨면 늘 하는 일이 있습니다.

모든 것에 앞서서 일기장을 폅니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때때로 잠에서 깬 아내가 내 방으로 들어와서 뭘 벌써 일어나느냐고 하는데,

그러면, "이게 내가 일어나는 시간이야"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아내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거두고 다시 자기 잠자리로 돌아갑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기록


누군가 내 일기를 보면 무슨 쓸 거리가 그리도 많으냐고 할런지도 모릅니다.

매일 아침과 밤에 쓰는 일기의 양이 큰 노트로 적어도 10장은 넘으니까 말이죠.

쓰는 내용들을 보면 수년간의 내용이 비슷비슷합니다. 

늘 비슷한 내용들로 일기는 채워집니다.

그런데 왜 쓰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일기는 그날의 기록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뇌활동을 활성화시키는 큰 기능이 있습니다.


생각하기를 멈추면 뇌는 계속 위축이 되어 갑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뇌는 몸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사분의 일(1/4)을 사용하는 구조물이기 때문에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을 합니다.

예전에는 이런 것을 내가 알지도 못했지만.

십여 년 전에 뇌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뇌의 특성을 설명하는 곳에서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곳이라서, 가능한 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 뇌는 노력합니다.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면 뇌는 수 없이 많은 뇌세포들을 소멸시킵니다.

세상에 나와서 사용해야 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죠.

쓰지도 않는 세포들을 그대로 놔두면 유지비가 많이 들어가니까 청소를 해 버리는 것입니다.

잔혹할 정도록 청소를 해 버립니다.

이것은 생각하기에 매우 아깝고 아쉬운 일일 수 있습니다.

만일 그때 내 뇌가 그렇게 뇌세포를 소멸시키지 않았다면

나는 천재적인 사람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을 테니 말이죠.

하지만 그 많은 세포들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그냥 천재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선 그 많은 세포를 유지하느라고 에너지를 너무 썼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 가지고만 있었지 계발을 안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클 겁니다.

왜냐하면 천재적인 능력이라는 것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할 때 발휘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더욱이 천재라는 사람도 태어나자마자 마찬가지로 수억 개의 뇌세포가 뇌에 의해서 소멸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재가 된 것은 계속 능력을 계발했기 때문에 지금의 천재에 이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현재 뇌의 능력을 뇌 탓으로 돌리면 안 될 것입니다.


무엇을 기록하는가?


나는 일기의 첫 줄은 감사함으로 시작합니다.

"이 자리로 이끄신 나의 주 하나님께 감사한다"

잠에서 깨어나면 자리에 누워 있고 싶어서 게으름을 피우던 나를 이 자리로 나오게 이끄셨으니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일어나기 싫어서 버티지만, 결국에는 누워 있어 봤자 좋을 것 없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고,

결국에는 책상 앞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일기는, 어제보다 나아진 모습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기록해 나갑니다.

잠이 아직 덜 깬 상태라서 글씨는 나밖에는 알아볼 수 없이 엉망입니다. 그럼에도 계속 써 나갑니다.


어제보다 좋아진 시력, 어제보다 좋아진 자세, 어제보다 좋아진 정신......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일이 있더라도 그런 것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오늘 새롭게 주어진 시간을 내가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일에 붙잡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계속 써 나가다 보면, 몽롱했던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하고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번지기 시작합니다.

거듭될수록 얼굴에 웃음이 차 오르는 때까지의 시간이 점점 짧아집니다.


새벽의 이 순간은 정말 행복합니다.

"아,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겠구나!"


일기 쓰기는 짧게는 10분, 길게는 한 시간 계속이 됩니다.

오래 쓰게 되는 경우에는 마음속에 쌓인 것이 많은 경우이거나

잠이 덜 깨어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가 길어질 때입니다.

마음에 쌓인 것은 굳이 일기에 쏟아내지 않습니다.

오늘 좋아진 일들, 어제 좋아진 일들을 계속 기억해 내면서 기록해 나가다 보면

마음속이 가벼워지면서 새로운 희망으로 의욕이 솟아납니다.


요새는 새벽 5시가 되면 브런치 글 알림을 기다립니다.

대개는 그 알림 전에 일기가 끝나지만, 계속 쓰고 있다가 알림을 들으면 바로 브런치의 새 글을 읽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글들이 가슴속으로 파고듭니다.

그리고 나의 생각과 새 글과의 교통이 일어나면서 마음이 풍요로워져 갑니다.

공감된 것을 답글로 적습니다.


새벽의 일기 쓰기가 끝나고 글 읽기도 끝나면

매일 빠짐없이 하는 체조와 스트레칭으로 들어갑니다.


30분가량의 체조로 몸은  날아갈 것 같이 경쾌해집니다.

반년 전부터 시작한 다리 스트레칭이, 이제는 상당히 유연해져서

양반다리를 하고서 허리를 무릎 쪽으로 당기면,

이마가 발끝에 닿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뻣뻣했던 내 몸이 유연해지고 있다는 즐거움이 가득해집니다.


이 짧은 반년 간의 기간에 이렇게 몸이 유연해지는 것을 보면서

"나의 뇌가 그동안 게을렀던 내 근육을 풀어야 하겠다는 내 마음을 도와주고 있구나"

하고 생각을 하면서, 내일은 더 부드러운 몸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출근 전까지의 아침시간은 늘 빠듯합니다.

그래도 가지고 나갈 것은 빠지지 않습니다.

하던 일을 멈출 때는, 모든 것을 원래의 자리에 돌려놓기 때문에

어디에 두었는지를 찾느라고 헤매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책상 설합의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거의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늘 정해진 곳에 도구들을 되돌려 놓기 때문입니다.

만년필은 맨 위쪽 설합.

지갑은 그 아래 설합.

노트와 책은 오른쪽 책꽂이 등등

책상 위에는 작업이 없을 때는 늘 비워져 있습니다.

퇴근 후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피곤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두고 잠에 떨어지지만.

그런 일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하루의 루틴을 만든다는 것


초등학교 시절에는 매일의 시간표를 짜느라고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그렇지만 사흘도 안되어 시간표는 폐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들이 워낙 많으니, 

아침 일어나는 시간부터 학교에 가기 직적까지의 스케줄이

30분 단위로 촘촘하게 기록되어 있었지요.

그런데 그것의 이행률은 아마도 5%도 안되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깨워주지 않으시면 그대로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었고,

아침 식사할 때까지는 몽롱한 정신으로 계획표를 볼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밥 먹고 나면 학교 가기 바빴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숙제도 안 하는 주제에 자기가 세운 목표롤 이행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죠.

공부하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골목에서 노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루의 루틴은 웬만해서는 마음먹은 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갓 같습니다.


그런데 루틴을 만들고 그것이 꾸준히 이루어지도록 하려면

너무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조그만 것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임을 서서히 알게 되었습니다.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오늘의 상태.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석 달 뒤에는 시작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는 것을 확인하는 것.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그 루틴을 꼭 지켜야 하겠다는 마음을 강하게 해 줍니다.

성취의 즐거움이 정말 크기 때문이죠

석 달(100일)을 넘기고 나면, 다음은 1년이고, 그리고 3년

이렇게 되면 10년으로 이어지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은 어차피 흐르거든요.


내가 청년이던 시절, 아버지께서 자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네 몸은 어째 젊은 늙은이 같으냐?"

워낙 운동을 싫어했기 때문에, 젊음 자체가 주는 체력 외에는 가지고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젊었기 때문에 몸이 꽤 유연했겠지만, 움직이는 모습이 그렇게 활기 있게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을 마흔 살이 되었을 때도 하셨습니다.


우리나라는 병역이 의무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복무 중에는 싫어도 체력단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젊어서는 고생도 사서 한다는 말이 그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지 않더라도 의무라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요?

병역이 없더라도 짐(gym)에 다니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사회생활하면서 짐에 다니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군대에서는 먹여 주고 재워주면서 체력까지 키워주니 좋지 않은가요?

좋은 쪽을 보면 좋은 것이 보이고, 나쁜 쪽을 보면 나쁜 것이 보이는 것이 인생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면서 즐거워합니다.

그러면 뇌에서 도파민과 옥시토신이 분비되면서 몸과 마음은 더욱 건강해져 갑니다.


불행한 사람은, 자기의 없는 것만을 계속 생각하면서 마음속이 늘 불편합니다.

그러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이 계속 분비되면서 에너지는 소진되어 가고

몸은 모르는 사이에 망가져가게 되어 있습니다.


새벽의 마음 가다듬기, 체조, 책 읽기, 글쓰기.

그것이 나의 아침까지의 정해진 시간표입니다.

책상 위에 붙어 있는 시간표는 아니지만, 

내 바이오 리듬에는 새겨져 있습니다.


풍요로울 때 기억해야 할 것


넉넉하다는 것은 복이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것인가요?


사람은 누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많이 가질수록 즐거워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성공한 기업으로서 대를 잇는 기업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가 아는 기업들 가운데 우리나라의 삼성, 현대, LG.

일본의 마츠시타.

이들 기업 가운데 최소한 두 곳에 관해서는 내가 그 후손들에 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마츠시타의 창업주인 마츠시타 코노스케는 일본에서 매우 존경받는 기업가입니다.

그는 아들을 말단 사원으로 입사를 시켜서 일반 직원들과 전혀 차이 없는 대우를 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한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들이 검소한 생활을 하도록 엄하게 키웠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그가 대기업의 후계자라는 것은 내가 사회인이 된 후 한참 지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가정은 늘 나의 존경의 대상입니다.


달랑 당랑 했던 내 주머니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내 주머니에는 지갑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넣어 둘 돈이 없었기 때문이죠.

몇 푼 안 되는 용돈이라서 주머니에 넣어도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네 명의 아들을 키우시느라고 부모님의 넉넉함이 부족했을 수도 있습니다만,

용돈을 넉넉하게 주시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내 주머니에는 정말로 달랑달랑 몇 푼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끼니를 굶는 일은 없었습니다.

혼자서 자취를 할 때도 세 끼는 꼭 챙겨 먹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한 달의 생활비를 그만 분실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라면 두 박스를 살 돈 밖에는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두 주간의 세끼를 라면으로 때웠습니다.

아침 라면, 점심 라면, 저녁 라면,

다음날 아침 라면, 점심도 라면, 저녁은 물론 라면......


세끼를, 라면과 김치로 때우고 나니, 나중에는 정말로 세상이 노랗게 보였습니다.

외국에서 귀국하신 아버지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깜짝 놀라셨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을 채워 주셨지요.

라면이 맛있는 것은 알지만, 자주 먹으면 안 되겠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처음으로 지갑을 가진 것은 유학시절이었습니다.

지하철 정기권을 넣어 두어야 했으니까요.

지갑 속의 현금은, 점심값과 기호품값 정도였지요.


그러다가 지갑에 돈이 좀 차기 시작한 것은

내가 독립을 해서 수입을 가지기 시작할 때부터였습니다.

마음껏 써 보기도 했지요.

그렇지만 늘 부족한 생각만 들었습니다.


낚시를 가르치신 부모님


대학 다닐 때까지 한 번도 넉넉한 용돈을 받아 보질 못했습니다.

그래도 때때로 친구들에게 빵집에서 빵을 사주곤 했습니다.

그 이상은 어려웠지요.


그런데, 공부를 하는 데 필요한 학비만큼은 넉넉하게 해 주셨습니다.

유학도 하게 해 주셨으니까요.

그리고, 연구를 하는데 필요한 장비를 산다든지, 소양을 키우기 위한 도구들도 사 주셨습니다.

돌아다보니, 아버지 어머니께서 네 아들을 키우시는 데 정말 부지런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낚시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물고기를 잡아다 주지는 않으셨던 것이죠.


이 글을 쓰다 보니 아버지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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