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생각할 때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 정도가 아닐까요?
내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꾸준히 마음을 모아서 기도를 하면 이루어질 거라는 생각"
기도를 하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
에므나의 의미를 알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는 참 얌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일은 땀을 흘리고 일해도 원하는 만큼 되기가 무척 어려운데,
두 손 모으고 "비나이다!"를 거듭하면 하늘에서 뚝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물론, 그러한 믿음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믿는 마음이 생기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니까요.
행복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착하게 살면 행복이 올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도 행복에 대한 우리들의 믿음 아닐까요?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믿음은 기적을 낳지만, 두 손 모으고 기적을 바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실하게,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는 것이 믿음이겠지요.
행복도 그 본질을 잘 이해하고 마음을 다하고 성실히 준비해야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새는 어떤 행사가 있으면, 끝날 때 기념촬영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또는 팔로 하트를 그리면서 활짝 웃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사랑합니다!"라고 합창을 하기도 하지요.
그러고 나면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화사하고 멋진 사진이 완성이 됩니다.
그런데, 아내 앞에서, 남편 앞에서 두 팔로 하트를 그리면서
"사랑해!"라고 말하라고 한다면,
팔이 안 올라갈 것 같습니다.
어딘가가 간질간질한 생각이 들어서 피식 웃으면서 얼굴을 돌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럿이 모여서 하면 되거든요. 그리고 행복해집니다.
교회학교 교사가 되고 나서, 학생들과 함께 율동을 하는데 몸이 막대기 같았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아주 즐겁게 율동을 하는데, 나는 즐겁기는커녕 힘만 들었습니다.
주눅까지 들었지요.
그래서 생각을 했습니다.
굳게 결심을 하고 나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볼 사람은 교회학교 식구들밖에 없지? 에라 모르겠다!
그리고는 온몸을 움직여서 큰 율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이 55세의 초짜 교사로서 그렇게 하니 얼마나 우스웠겠습니까?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뒤에서 고등부 목사님께서 내 모습을 보시고 웃으셨다고 하더군요.
내가 맡은 반은 대부분 맨 앞줄이었습니다.
그래서 뒤에서 내 율동에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었지요.
그런데, 이런 생활이 거듭될수록, 그 즐거움이 커지더군요.
새 학년을 맞게 될 때마다 학생들보다 내가 더 열정적으로 율동을 하니,
40년 가까운 세대차이가 있음에도 학생들과 매우 가까워지기 쉬웠습니다.
조용히 말씀만 듣고, 조용히 찬송을 하는 것보다도, 열심히 율동을 하면서 온몸으로 찬송을 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요.
행복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사랑해!라고 두 팔을 벌리고 달려갔는데, 안기기는커녕,
"왜 이래. 징그럽게!"라고 밀쳐 버리면 얼마나 겸연쩍겠습니까?
조그만 기쁨의 표시에도 감격을 하는 마음의 훈련.
어색하지만, 사랑을 표현하면서 달려오는 남편, 아내에게
"사랑해!"라고 크게 소리 지르며 달려가서 허깅해 주는 연습.
(사실 아직 나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노력하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올린 글에, 택시 문을 열고 나서 기사분께 인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처음에는 솔직이 어색했습니다.
그래도 매번 했습니다.
이제는 안 하면 어색합니다.
뇌는 우리의 돌출행동에 대해서 이렇게 반응합니다.
"그러다가 망신당하면 어쩔라고"
하지만, 익숙한 행동에 대해서는 더욱 익숙해지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들 앞에 있는 사람은 괴물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잡아먹지도 않습니다.
뇌가 안심해도 되도록 한 걸음씩 다가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