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우리 곁에 자리 잡은 카톡 선물하기. 처음엔 간편하게 생일을 챙겨줄 수 있음에 편리했다. 하지만 나의 삶에 대학교, 교회 모임, 사회생활 등이 생기며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더 이상 ‘카톡 선물하기’는 기쁨이 아닌 부담으로 변해버렸다. 나만 이런 것일까? 한국에만 있는 이런 신기한 카톡 문화로 인해 이미 많은 분들이 피로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제는 주변 사람들보다 가족을 챙겨야 하는 맘카페의 엄마들의 소리는 같은 예비 엄마로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내 지인 생일에 뜬 ‘카톡 생일’ 알림을 보자마자, 나는 생각한다. ‘그래, 이 사람은 저번에 내 생일을 챙겨줬었나?’ 카톡 선물하기에 들어가서 그 사람이 나에게 ‘기브’를 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확인이 되면 ‘앤 테이크’를 하기 위해, 내가 받은 선물을 찾아보고 가격대를 파악한다. 그리곤 비슷한 가격대의 선물을 보내야 ‘기브 앤 테이크’의 완성이다!
‘후후, 이번에도 미션 완료이다’
이렇게 선물을 주고받는 일에 자연스럽게 계산기를 두드리는 나를 몇 번 보게 되면, 이제 회의감이 드는 것이다. ‘뭐야. 나 왜 이렇게 속물이야?’
그러면서도 카톡 선물하기를 놓지 못하고 살아가다, 드디어 결혼을 하고 가계부를 작성하며 이 지긋지긋한 굴레를 벗어나기로 했다! 남들이 보면 결혼하고 잠수 탔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결혼 전에 누구보다 생일을 잘 챙겨줬던 내가 ‘내 생일 알림’을 끄고는 1년 이상 만나지 않은 지인들의 생일 알림에는 흐린 눈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지인들이 나를 싫어하고 흉보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와 괴롭게 하였지만, 이미 10년 이상을 카톡 생일 알림의 굴레에서 노예처럼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굳게 잘 잡혔다.
우리는 언제부터 실시간 메시지, 알림, 전화 심지어 생일에도 하나하나 반응을 하며 살았던 것일까. 사실 스마트폰의 보급은 2011년으로, 우리가 거리와 상관없이 24시간 소통을 하게 된 지는 15년도 되지 않았다. 이 시간 동안 우리는 더 친밀해지고 사랑이 많아지는 장점을 경험하기보다는 예민하고 민감해지는 관계를 더 갖게 된 것 같다.
직장에서는 상사의 메시지와 전화를 언제든 받을 수 있는 연결고리가 생겼고, 친하지 않은 지인의 생일 알림에는 의무적으로 선물을 보내야 하는 강제적인 관계가 생겼다. 멀리 살아서 보지 못하는 부모님에 대한 애틋함 대신 근무시간에도 전화하는 부모님의 관심에 부담스러워하는 자녀들이 생기고 있다.
우리에겐 ‘적당함’이 필요하다. 사전적 ‘적당(適當)’ 이란 사물(事物)의 정도ㆍ수준ㆍ상태 등이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또는 잘 어울려 마땅함이다.
'카톡 생일 알림'은 이 적당함을 방해한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챙겨주는 에너지는 원래 소중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갈 에너지를 배분한 것이다. 난 20대 후반부터 내 저질 체력을 알고 있었고,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계 있는 체력의 배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카톡 생일 알림'을 꺼두니 확실히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상대만 보면 된다는 명확함이 생겼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내 생일에는 '축하를 거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