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미술을 하고 싶었다. 그림을 남들보다 조금 더 비슷하게 그리는 정도였지만, 그 작은 강점을 내 삶의 방향으로 삼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시기, 우리 가족의 경제 상황은 내 미술의 꿈을 막아섰다. 언니의 미국 유학 비용이 커져가는 상황 속에서 학원을 다닐 여유도, 디자인 고등학교에 갈 가능성도 사라졌다. 그렇게 내 첫 번째 꿈은 사라졌다.
2012년, 대학에 진학하면서 호텔경영학과에 들어갔다. 처음엔 설레었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적성에도 맞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다시 자연스럽게 디자인을 꿈꾸게 되었다. 아, 나는 여기서도 실패하는구나.
2013년, 갑작스럽게 대학 생활을 포기하고 ‘아프리카 우간다’로 떠났다. 그곳에서 내가 자아를 찾고, 영어도 배우고,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해외생활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곳에서도 나는 외로웠고, 자아를 실현하는 대신 ‘도망간 곳에 천국은 없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2016년, 디자인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작은 회사에 편집 디자이너로 취업했다. 두근거렸다. 이번엔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회사는 중소기업 특유의 불합리한 문화가 가득했다. 남초 회사에서 유일한 여자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온갖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다. 매일같이 주 3회 이상의 회식과 과도한 업무, 거기에 담배 냄새가 진동하는 사무실은 내게 참혹한 실패의 첫 회사였다.
2018년, 두 번째 회사에 취업했다. 이번엔 디자이너로 지원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마케터로 직무 제안을 받았다. 이번엔 좀 다를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금방 무너졌다.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호된 업무량과 눈코 뜰 새 없는 일정. 2년 뒤, 결국 나는 건강을 잃었고 공황증세까지 찾아왔다.
2020년, 몸을 회복하려고 마음먹었다. 이때는 단순히 집 가까운 회사에 취업했다. 마음이 편할 것 같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비전도 없었고, 나와 맞는 사람도 찾기 어려웠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2021년, 스카웃 제의를 받고 새로운 회사에 들어갔다. 이번엔 다를 거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하지만 단 일주일 만에 그곳을 떠났다. 회사 사람들과의 라이프스타일이 나와 너무 맞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실패의 경험을 더했다.
2023년, 외국계 NGO에 들어갔다. 처음엔 큰 기대를 품고 시작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현실은 달랐다. 팀장은 인격적으로도, 실력적으로도 부족한 인물이었다. 자연히 나에게 돌아오는 성취감은 적었고, 어느새 나는 또다시 실패를 경험하고 있었다.
2024년, 마침내 나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있었다. 그리고 이제 임신을 이유로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사실은 팀장과의 관계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서였던 것이 컸다. 이건 또 하나의 도피였을까?
지금 돌아보니, 내 삶은 정말 실패들로 가득 차 있었다.
2024년의 나로서 다시 돌아보는 내 과거는 참으로 험난했다. 하지만 이 실패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어릴 적 집안 사정으로 미술의 꿈을 포기했지만, 그 덕분에 대학에서 실패하고 다시 디자인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이 나를 편집 디자이너로 이끌어 주었다.
첫 번째 회사에서의 고생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그때의 환경에 비하면, 지금의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깡이 생겼다. 그렇게 생긴 깡으로 두 번째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비록 그곳에서 건강을 잃었지만, 그때 나는 체력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아, 체력이라는 연료는 한번에 소모하면 안 되는 거구나.’ 그때 배운 교훈은 지금까지도 내 삶에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그 후, 여유로운 회사에 들어갔지만, 거기서도 나는 만족할 수 없었다. 단순히 여유만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때, 내가 그저 쉬고만 싶은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외국계 NGO에서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물론 쉽지 않았지만, 모든 실패들이 나를 더 나은 선택으로 이끌고 있었다. 나의 크고 작은 실패들은 결국 다음 선택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실패는 멈춤이 아니고, 하나의 단계일 뿐이었다.
지금 나는 과거의 선택들로 이루어진 산물이다. 그리고 그 선택들에는 정답이 없다. 오로지 그 선택들로 이루어진 나만 있을 뿐이다. 만약 지금의 내가 내가 바라던 모습과 조금이라도 닮아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그저 또 하나의 단계를 밟아가는 중일 뿐이다.
20대 초반의 나는 참으로 어두웠다. 그때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희망이란 단어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그때보다 나은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더 많은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의 결과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왔는지를 조금씩 더 분명히 보게 되었다. 그것이 나라는 사람에 대한 지표가 되어가고 있다.
언젠가 내 아이도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그때 나는 꼭 말해주리라.
“아들아, 너의 실패를 축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