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티푸, 보리
본가에서 키우는 말티푸 '보리'는 주말만큼은 사료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손님이 오는 날엔 간식이 주식이기 때문이다. 간식을 얻기 위해 개인기를 선보이는 보리에게 주말은 하나의 큰 무대다. 보리는 주말이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배를 비워두고 준비 태세에 돌입한다. 사람들의 방문을 간절히 기다리며 말이다.
보리가 주말인지 아닌지를 아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 금요일 늦은 밤, 아빠가 어김없이 알코올 냄새를 풍기며 귀가한다. 회사 동료들과 한잔 걸친 뒤 돌아오는 아빠의 발걸음은 주말의 시작을 알리는 첫 신호다. 보리는 그 냄새를 맡고 소파에 몸을 바짝 붙인다. 아빠는 그런 보리에게 피곤한 듯 머리를 한 번 쓰다듬는다.
두 번째 신호는 아빠와 엄마가 거실에서 티비 앞에 나란히 앉아 있다는 것이다. 평일에는 각자 바쁜 일정 속에 저녁도 대충 먹고 잠들기 바쁘지만, 주말엔 다르다. 한낮이 되도록 아빠와 엄마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티비를 보며 나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리는 그 모습을 보면 아, 오늘은 주말이구나 싶다.
가장 먼저 오는 손님은 첫째 누나다. 서울에서 자취하는 첫째 누나는 주말 아침 일찍 집으로 돌아온다. 한 손엔 주말 동안 입을 옷, 또 한 손엔 양손 가득한 먹을거리를 들고서. 누나는 긴 생머리에 주근깨가 박힌 얼굴을 하고 웃으며 문을 연다. 그 웃음소리는 보리에게는 언제나 달콤한 냄새와 같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보리는 누나에게서 간식을 받을 시간이 다가왔음을 안다.
“보리야!” 하이톤으로 부르는 누나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보리는 꼬리를 흔들며 누나에게 달려간다. 누나는 커다란 가방을 열어 북어포 간식을 손에 쥔다. 세 개나 주었지만, 보리는 더 많은 간식을 기대하며 눈을 빛낸다. 물론 지금은 참을 수 있다. 왜냐하면, 주말은 길고, 아직 더 많은 기회가 남아 있으니까.
이제 보리는 아빠에게 접근한다. 소파에 누워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드러누운 아빠 곁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이빨로 리모컨을 물고 가버린다. 아빠는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소리친다.
“보리야, 그거 내려놔!”
아빠의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리모컨을 더 세게 물어준다. 소파 밑으로 들어가 이빨로 리모컨을 몇 번씩 씹어대니 티비 소리가 점점 커진다. 아빠는 마침내 간식을 던져주며 리모컨을 되찾으려 한다. 보리의 작전은 성공이다.
오전 간식도 이렇게 획득 완료!
정오가 지나고, 창문을 통해 빨간 햇빛이 집 안으로 스며들 즈음, 둘째 누나네가 도착한다. 둘째 누나는 결혼 후 독립해 따로 살지만, 주말마다 자주 찾아온다. 보리는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그들과 함께 바깥으로 나가 산책을 할 꿈에 부풀어 있다. 콧속으로 신선한 바람을 맞고, 주머니에서 간식을 꺼내줄 둘째 누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잠시 후, 보리의 기대는 금세 무너진다. 둘째 누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곧바로 나가버리고, 아빠와 엄마도 옷을 챙겨 입기 시작한다. 보리는 그들이 자신을 두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 불안해진다. 꼬리를 흔들며 간절히 그들의 발길을 쫓아보지만, 결국 현관문이 닫히고 만다.
"왈왈왈왈!"
평소에 잘 짖지 않는 보리가 현관 앞에서 미친 듯이 짖어댄다. 그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진 아빠는 결국 개껌을 던져준다. 보리는 그렇게 개껌을 받아들고, 어느새 구석으로 들어가 씹기 시작한다. 개껌을 씹으며 애초에 자신이 왜 그토록 나가고 싶어 했는지도 잊어버린 채. 이내 보리는 다시 평온을 되찾고, 가족들은 문을 닫고 나간다.
시간이 흘러 밤이 되었다. 어둠이 깔린 집에 들어오니 보리의 사료 그릇은 텅 비어 있었다. 더 이상 간식을 받을 구석이 없음을 안 보리는 사료를 먹은 것일까? 아니면 참다 참다 결국 사료를 먹은 것일까? 그건 알 수 없지만, 보리는 한껏 배를 불린 채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온다.
“너, 밥 다 먹은 거 다 알아.”
뚱뚱한 배를 장착한 보리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자, 가족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보리는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두의 손길을 반기며 배를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