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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무관심 Jul 16. 2021

유로 2020 단상(Feat. 유로 2020)

그러니까 2002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2년 전인 2000년. 열여덟 살 남자아이들이 우글거리는 교실의 여름은 온통 축구로 가득했다. 야자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자율적으로 자신들만의 베스트 11을 연습장에 그렸고, 쉬는 시간이 되면 다 같이 모여 어느 팀이 최강인지를 겨루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선수는 네드베드. 사실 네드베드의 경기 모습을 자세히 본 친구들은 거의 없었겠지만, 왠지 그를 스쿼드에 올려놓아야만 축잘알이라고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마치 ‘나만 알고 싶은 밴드’ 같은 부심의 축구버전처럼.


유로 2000은 ‘천하제일 축잘알’을 뽑기에 완벽한 축구대회였다. 시작은 우선 우승팀 맞히기. 나만 알고 싶은 선수는 어디까지나 나만 알고 싶은 선수였다. 일단은 내기에서 이겨야 하니까 월드컵 우승팀인 프랑스와 개최국인 네덜란드에 배팅이 몰렸고 결국엔 제비뽑기로 방식을 바꾸었다. 내가 뽑은 팀은 이탈리아. 터키를 뽑고 비명을 질렀던 내 옆의 짝에 비하면 만족할만한 결과였다. (그 친구는 한동안 터키가 별명이었는데, 그래도 터키는 8강에 진출했다.) 


부지런한 유럽 사람들은 축구를 새벽에 하니까 고2였던 우리들이 중계를 생방송으로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치 오늘 아침에 네덜란드에서 날아온 것만 마냥 같은 생생한 목소리로 경기를 복기하는 친구들 대부분은 아침 뉴스의 하이라이트로 벼락치기를 했을 것이다. 그토록 현장감 넘치던 말들로 경기를 재구성하던 우리를 더 감동의 도가니로 이끌던 경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4강전이었다. 축구의 아름다움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네덜란드, 쉐도우 스트라이커의 개념을 정의했던 베르캄프의 활약, 골문으로 향하는 모든 공을 막는 톨도의 선방은 역사에 남을 명승부였다. 저런 미친 골키퍼가 심지어 주전이 아니라는 소문은 교실의 흥분에 더욱 불을 지폈다. 


그렇게 이어진 결승전은 이탈리아 대 프랑스. 마침 시험기간이어서 친구와 나는 같이 밤을 새우며 공부를 하다 축구를 보기로 했다. 딱히 그전까지 이탈리아를 응원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돈이 걸려있으니 이번만큼은 같이 응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다짐도 잠시. 도무지 졸음을 이길 수 없었던 나는 공부는 공부대로 못하고 잠은 잠대로 못 자는 전형적인 공부 못하는 학생의 패턴을 증명하고 있었고, 축구 시청에 올인한 친구는 중간중간 경기 결과를 전달해주었다. 야. 이탈리아가 우승할 것 같아. 이제 거의 끝나가라는 말을 잠결에 들으며 다시 잠이 든 것 같은데, 잠시 후 친구가 나를 깨우며 웃으며 말했다. 트레제게가 골든 골을 넣고 프랑스가 우승을 했다고. 그렇게 이탈리아를 응원하던 나의 마음은 끝이 났다. 


- 한동안 축구를 챙겨보지 않고 있다가 요 근래에 들어 다시 축구를 보기 시작했다. 즐겨하던 축구게임 속 선수들이 실제로는 어떨지가 궁금하기도 했고, 20년 전의 그날들이 다시 떠오르기도 했었다. 그렇게 알게 된 실제의 축구 선수, 키엘리니. 1984년생인 그는 스페인과의 4강전 승부차기를 앞두고 장난기 낀 모습으로 상대 선수에게 인싸력을 과시한다. 부담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온전한 즐거움만이 가득한 웃음으로. 그 모습은 누군가의 말처럼 매사에 장난인 애와 매사에 진지한 애의 귀여운 다툼처럼 보였다.


월요일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춘 건 후반전이라도 키엘리니의 경기 모습이 보고 싶어서였다. 실제론 어떤 경기를 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이 선수, 지금까지 내가 본 센터백들과는 다른 축구를 한다. 경기 내내 동료들의 수비라인을 잡아주며 패스 방향을 알려주고 왼쪽 풀백의 오버래핑을 지시한다. 농구처럼 선수들 사이의 거리가 가까운 것이 아닌데도 계속해서 동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선수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공격 시에는 직접 하프라인을 넘어와 빌드업에 가담한다. 세련된 골키핑도 화려한 패스도 없었지만 안정적으로 전개를 이끌어나갔다. 무엇보다 수비수 본연의 목적인 상대 선수를 놓치는 법이 없다. 동료 수비수가 뚫릴 땐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최종 라인을 지켜낸다. 마치 경기장 전체를 꿰뚫어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 날의 경기는 결국 승부차기까지 갔다. 불안감을 숨길 수 없었던 잉글랜드의 다섯 번째 키커 사카의 얼굴을 보며, 이 경기 여기서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키엘리니의 웃음이 다시 떠올랐다. 논어에서는 일이관지라고도 한다.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것을 꿰뚫는 것. 그리고 이치를 깨달은 자에게선 언제나 여유가 느껴진다. 


동갑내기인 이 선수가 최대한 오랫동안 필드에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오랜만에 응원하고 싶은 선수가 생겼다.(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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