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 무관심 Jul 16. 2021

흔적과 표식

1. 헌병대 업무의 주된 일과는 영창관리였다. 영창에 수감되는 이들은 보름에 가까운 날들을 세 평 남짓한 작은 방안에서 보냈다. 이들은 대부분 병장 혹은 상병이었고, 구타 혹은 가혹행위가 주요 이유였다.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그들이 수양과 독서 이외의 행동을 하지 못하게 감시를 했다.


절대 그들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말 것. 그들을 철저히 통솔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그 말은 임무였으며 명령이었고, 동시에 협박이었다. 계급이 더 높은 수용자들은 이등병이나 일병이 근무를 설때면 종종 거들먹거리는 태도를 보였다. 그 모습을 다른 선임이 목격하면 끝을 알 수 없는 갈굼을 당하곤 했었다.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아니 선임들에게 더 깨지지 않기 위해 더 크게 소리를 질렀고, 더 강한 척을 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더 소리칠수록 그들은 통제 범위에서 더 벗어났다. 통제를 하기 위한 행동들이, 그러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명확한 증거였다.


왼쪽 가슴에 붙어있는 작대기가 하나였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군인들이 계급을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이 있으니까. 머리카락의 길이, 군복의 주름, 군화의 상태뿐만 아니라 평상시의 표정과 서있는 모습만으로도 그가 신병인지, 병장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 영창 속의 그들은 맞은편의 군인을 보고 몇 초 만에 깨달았을 것이다. 너는 이등병이구나. 얼마 전까지 내가 밟아주었던 놈들과 똑같은 짬 찌끄레기들.



2. 언제부터였을까. 더 이상 수용자들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게 된 것은. 일부러 화를 내지도 않았고 괜히 강한 척을 할 필요도 없었다. 필요한 사항들을 친절의 말들로 지시했고 그들은 더 친절한 행동으로 내게 답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내 가슴 위에 붙어 있는 작대기가 4개가 되었기 때문일까. 내 어깨위에 걸려있는 초록의 견장 때문일까. 굳이 그런 표식이 없었더라도 그들은 나의 계급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평상시의 표정, 서 있는 모습에서의 여유, 그리고 그 오랜 시간을 견뎌낸 모든 흔적들을 통해서.



3. 나이를 실감하는 순간마다 왠지 그 날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흔적이 아니라 표식만으로 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문과 함께.








작가의 이전글 <중쇄를 찍자>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