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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무관심 Jul 16. 2021

2019NBA FINAL REVIEW

듀란트의 부상, 그리고 슬램덩크


-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케빈 듀란트는 코트를 떠난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듀란트가 아킬레스 건 부상을 당했다고 말하는 밥 마이어스 단장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2차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클레이 탐슨이 3차전 출장을 강력히 요구했을 때 구단은 절대 불가를 선언했다. 탐슨보다 훨씬 더 심각한 부상을 안고 있었던 듀란트였기에 팀이 엘리미네이션에 몰리지 않았다면 절대 경기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4차전이 끝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듀란트가 없는 골스의 우승은 힘들 거라고 예측했다. 


두 번의 파이널 MVP에도 불구하고 워리어스 내에서의 입지는 커리만큼 탄탄하지 않았다. 휴스턴과의 4차전 중반 부상을 입고 결장을 했는데, 이후 팀은 6연승을 달렸다. 듀란트는 필수품이 아니라 사치품이라는 말이 나왔다. FA가 될 수 있는 다음 시즌에 팀을 떠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작은 부상이지만 일부러 태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 듀란트가 5차전에 출전하게 됐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위기에 몰린 구단이 그에게 어떤 압박을 가했는지, 자신에게 점점 등을 돌리고 있는 언론과 팬들 때문이었는지, 본인 자신이 쓰리핏에 대한 열망이 무엇보다 강했는지, 아니면 이 모든 게 다 이유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5차전에 출전했고 1 쿼터에 11점을 기록했다. 팬들은 흥분했다. 아마 듀란트 본인도 조금은 흥분했던 것 같다. 2 쿼터에 들어선 캐치 앤 슛이 아니라 돌파를 시도한다. 잠시 후 그는 오른쪽 다리를 움켜잡으며 코트에 주저앉는다.


어떤 이유에서 그가 출전했건, 가장 큰 책임은 밥 마이어스 단장에게 있다. 스티브 커 감독은 듀란트의 출전 여부를 구단과 의료진에 맡겼다. 의료진은 단장에게 확신이 아니라 우려 섞인 희망을 건넸을 것이다. 그 희망으로 그는 듀란트를 5차전에 출전시킨다. 그 모든 우려를 감내할 만큼 쓰리핏의 유혹은 달콤하다. 


- 절망에 빠진 밥 마이어스 단장의 표정에서 나는 <슬램덩크>의 안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는 산왕과의 경기에서 강백호의 부상이 심각한 줄 알고 있었음에도, 팀의 승리와 선수의 성장을 보고 싶어 교체를 지시하지 않는다. 나중에 침통한 표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데 그때 강백호의 명대사가 나온다.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난 지금입니다.”


강백호의 극적인 버저비터로 산왕과의 경기엔 승리했지만 그는 부상 후유증으로 기나긴 재활훈련에 들어간다. 선수 자신이 어떤 의지를 갖고 있든지 팀을 지휘하는 결정권자는 냉정해져야 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듀란트에겐 기나긴 재활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구단주는 이례적으로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 애통한 마음을 전달하며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1승의 대가는 구단에게도 선수에게도, 그리고 팬들에게도 가혹하게 남을 것이다.


- 이번 5차전은 이 외에도 여러 장면에서 <슬램덩크>를 떠올리게 한다. 경기 종료까지  3분여 남은 상황. 레너드의 연속 10 득점으로 랩터스는 6점 차로 앞선다. 다급해진 워리어스는 3점 슛을 쏘는데 림을 벗어나고 공격 기회는 다시 랩터스가 갖게 된다. 이때 닉 너스 감독은 갑자기 타임아웃을 부른다. 레너드에게 휴식을 주고 확실한 공격 패턴을 만들고 가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정작 휴식이 필요한 쪽은 워리어스였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지만 작전타임은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랩터스의 질식수비를 벗어나기 위한 무한 스페이싱으로 체력이 고갈되었던 워리어스는 이 작전타임으로 에너지를 되찾고 패턴 플레이를 성공시킨다. 


<슬램덩크>의 북산과 산왕의 마지막 30초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때 산왕은 1점 차로 뒤지고 있었지만 감독은 작전타임을 부르지 않는다. 상대에게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고 공격에 나서겠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강백호는 부상으로 제대로 뛰지도 못했다. 포인트 가드 이명헌의 게임 운영에 승부를 맡긴 도감독의 작전은 성공했다. 정우성의 슛으로 산왕은 극적으로 승부를 뒤집는다. 


- 듀란트가 코트에서 쓰러졌을 때, 토론토의 홈팬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를 지른다. 이때 토론토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카일 라우리는 관객들을 자제시키며 듀란트를 위로한다. 이 장면은 이번 파이널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작년까진 드로잔과 함께 새가슴 듀오로 조롱받았던 카우리였지만, 올해엔 강심장 배테랑으로 거듭났다. 


라우리는 이날 4 쿼터의 마지막 슛으로 또 하나의 명장면을 만든다. 1점 차로 지고 있는 상황, 사이드라인에서 3점 버저비터를 던지는데 공은 에어볼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역시 새가슴은 영원하다고 조롱했는데, 사실 라우리의 슛은 드레이먼드 그린의 블록슛에 걸렸기 때문에 에어볼이 된 것이었다. 클러치 블록슛은 <슬램덩크>에서 북산과 해남의 경기에서도 나온다.


경기 종료를 몇 초 앞두고 해남에게 뒤지고 있던 상황. 사이드라인에서 정대만은 3점 슛을 쏘기 위해 점프한다. 정대만은 들어갔다고 생각했지만 공은 림을 튕겨 나오고 북산은 패배하게 된다. 정대만은 전호장에게 “건드렸는가?”라고 묻는다. 전호장은 “손끝으로만”이라고 말하며 웃는데, 그의 손가락 끝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 아마도 이번 시즌을 끝으로 골든스테이트의 왕조는 끝이 날 것이다. 듀란트는 팀을 떠날 가능성이 높고, 남게 되더라도 상당 시간을 재활에 투자해야 한다. 이궈달라와 리빙스턴의 기량은 점점 쇠락하고 있고 상대팀들도 골든 스테이트의 농구에 대한 파해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커리와 골든스테이트 덕분에 다시 NBA를 보게 되었는데, 내년에도 지난 4년처럼 즐겁게 볼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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