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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무관심 Jul 23. 2021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 리뷰

출생의 비밀과 기억상실증, 시한부의 삶과 복수라는 삼류 드라마의 흔하디 흔한 소재가 종합적으로 등장함에도 드라마는 막장으로 치닫는 법이 없다. 오히려 이야기의 흐름 속에 이 모든 코드들이 자연스레 녹아들어, 어디선가 수도 없이 봐왔던 설정들에서 생경함을 느끼고 또 신선함을 겪는다.


캐릭터는 다채롭고 배우들은 과하지 않으며 호흡은 강약을 조절한다. 추리소설을 읽는 듯 한 여러 에피소드들은 그 자체로서도 완결성을 지니지만, 또 동시에 마지막의 결을 잇는 지침이 되어준다. 법정을 흐르던 무거운 기류는 어느덧 사람의 따스함으로 가벼워졌고, 쉬이 이해가 어려웠던 법의 언어들은 구체적인 사례들과 함께 일상의 말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귀신 살인 사건>의 공소가 기각되는 과정은, 그것이 물론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드라마틱한 결정이었을지언정 어쩌면 법과 정의와 상식이 동일선상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하였다.


수하가 혜성을 만나기 전 늘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녔던 것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읽고 또 듣는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사랑에게서 사랑이 아닌 말을 들어야 하고, 이별이 오기 전에 이별을 헤아려야 한다. 미움보다 먼저 나를 미워해야 할 때도 있다. 드라마는 점점 끝을 향해 가고 있고, 목소리들은 어느새 귀밑까지 차올랐다. 아직 들어야 할 목소리가 더 많은 것 같은데. 더 듣고 싶은 말들이 많은데. 남아 있는 말이 없음에 아쉬움이 남는다. 뻔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혹은 그 뻔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돌이킬 수 없는 심연의 어딘가로 빠져버리진 않을까 내심 마음도 쓰인다. 하지만 그 어느 것보다도 방송의 끝과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로 인해 원치 않은 목소리들을 읽게 될까 봐 걱정이 된다.


어쨌든, 모처럼 하루를 기다리게 하는 드라마. 그 끝을 기다리며.(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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